동짓날 팥죽(2015-12-22)
시골아이라서 일찍부터 유학생활을 해야 했다.
중학생부터 시작되었으니 어머니의 밥상은 까마득히 그리운 어린날의 풍광으로 머물뿐이다.
40년도 더 지난 중학시절,
그저 무섭고 엄한 규율선생님은 우리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호랑이 선생님이었다.
엄동설한 길고 긴 겨울, 우리들의 놀이는 다양성도 기발함도 없는 칙칙함의 연속이었다.
다만 호랑이선생의 눈길을 피해 발거벗은 여인들의 사진이 실린 잡지를 훔쳐보거나 하지말라는 짖거리로 희열을 느끼면서 시시덕 거리는 것이 전부였다.
하루는 학교친구들과 하숙집에 모여 화투를 했다.
여럿이 함께 할 수 있는 뽕놀이였다.
내기는 우리들이 남몰래 흠모했지만 번번히 밉살스러운 행동으로 계집의 마음을 도려내던 공동의 애인 그 계집에게 부드럽게 말을 붙여 미소를 번지게 하는 게임이었다.
한창 화투장을 돌리는데 문이 열리고 난데없는 성난 호랑이가 방문을 가로 막는다.
오금이 저린다는 말이 이런것이구나, 손발 떨림이 기타 줄이라면 비운의 멜로디로 승화되었을법 하다.
고개는 숙이고 있지만 그간 친우들이 받았던 온갖 체벌의 기법들이 파노라마로 돌아간다.,
이때 하숙집 아주머니가 선생님 오셨냐며 인사를 한다.
-아,선생님,오늘이 무슨 날인교. 이 어린 학상들의 눈썹을 하얗게 만들참이요.
오늘은 잠자면 안되니 뽕놀이 하면서 밤을 지새라고 내가 시켰소.-
그래 보니 그날이 동짓날이었고 그 아주머니가 그리워진다.
하지만 살아 계시다면 그 아주머니에게 동짓날 잠을 자면 왜 눈썹이 하얗게 되는지 꼭 묻고 싶다.
길샘(사회친구에게서 팥죽을 먹으며 들었던 이야기를 살짝 데쳐서 내놓은 글장난이라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