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샘 김동환의 기행-러시아 연해주 –5
서구문화 최단거리서 만나는 블라디보스톡
동해항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666km
온몸으로 태양을 받아 들이는 아침
동해에서 크루즈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했다.
매일 오후 2시에 출발 다음날 아침 11시에 도착하는 긴긴 항해일정이다.
비행기로 14시간 정도는 날랐어도 배를 타고 이리도 긴 시간을 보내기는 처음이다.
내게서 가장 긴 항해시간은 남북의 평화물결에 따라 현대해상의 첫 항해인 금강산 가는 길이었다.
배로 휴전선을 넘어간다는 두려움과 감격이 깜깜한 한밤의 항해를 지루하지 않게 했다.
젊은날 아버님의 사업장이던 백령도로 가던 항로였으며 문화기행을 위해 부산에서 대마도로 항해한 적이 있지만 하루를 꼬박 넘긴 시간들은 아니었다.
부친은 인천과 백령도에서 수산업을 하셨으며 백령도에는 냉동공장이 있었다. 부친은 이곳에서 잡은 꽃게를 활게로 포장하여 일본에 수출하는 사업을 했다.
싱싱한 꽃게를 차가운 얼음물에 담그면 잠시 기절을 하는데 기절한 게를 고무줄로 다리를 동여메고 톱밥상자에 담아 항공편으로 일본에 수출하는 사업이다.
이렇게 운송된 꽃게는 48시간까지 신선하게 유지되어 백령도 꽃게의 진미를 일본에서도 맛보게 한다. 하지만 한일어업협정이 1965년 체결되어 수산업이 기지개를 펴던 70년대 중반 갑자기 한,일간의 정치적 문제로 일본 수출이 전면 중단된다. 아버지는 수출을 준비하던 수천박스의 활게를 동네주민과 직원들에게 꽃게파티로 마감했던 그런 슬픈 사연이 있는 항해이다.
어선에 몰래 반입한 막소주 수백병과 냉동공장 앞 대청도 부둣가에 쌓인 꽃게 껍질은 얕으막한 눈물의 동산을 만들었다.
대청도 주민과 지역 해병대 군인, 학꽁치를 요리하는 전남여수에서 올라온 아가씨들과의 꽃게파티는 정치적 대립에서 한 수산업체가 무너지는 마지막 불꽃 같은 현장이고 이같은 꽃게잔치는 처음이자 마지막 잔치로 남았다.
김일성별장이 있고 북한의 옹진군 장산곶이 빤히 바라다 보이는 백령도에는 이제 그 흔한 홍어며 꽃게등이 더 이상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12시간 지리한 항해로 백령도와 대청도 주변의 소청도를 탐방한 것은 소중한 기억이기도 하다.
동해항에서 불라디보스톡까지는 360마일(666km)로 꼬박 하루가 걸리는 24시간의 항로이다. 동해에서 일본 사카이미나토 는 240마일(444km) 14시간이 소요된다.
사카이에서 마이즈루는 132마일(244km) 8시간이 걸리는데 이 크루즈는 매주 일요일 러시아로 항해를 한다.
블라디보스톡과 일본 사카이 마이즈루를 순항하는 크루즈여객선은 국내에서 출항하는 크루즈여객선중에서는 가장 긴 항해를 하는 여객선이다.
대부분의 종업원들이 필리핀 사람들이다. 뮤직바도 있는데 출연진들은 이곳에서 배를 청소하고 잔심부름을 하는 종업원들이 밴드도 연주하고 노래도 하는 1인 3역의 필리핀인들이다.
항시 밝고 명랑하며 작은 키에 활발히 움직이는 모습에서 인기가 높은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멀리 고성 땅이 희미하게나마 보이더니 어느새 우리는 동해 한 복판에서 외로운 외기러기처럼 홀로 떠가는 모습이다.
노랗고 붉은 먼동이 트는 즈음에 아주 작은 배 두척이 보인다. 선실 안내에게 물어보니 북한 배라고 한다.
렌즈를 당겨 카메라로 포착하니 선원 2명 정도가 보인다.
북한어선은 도색하나 없이 그저 까맣고 낡은 선박이다.
그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려 바다로 나온 선박을 보며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이 크로즈업 된다.
장엄하게 펼쳐지는 일출을 바라보다가 아침을 먹는다. 아침상에는 단출한 김치국과 김, 김치,시금치나물, 닭요리가 나온다. 어제 저녁에는 카레가 나왔는데.
선상에 마련된 흡연실이 갑판위에 층층마다 있어 애연가들에게는 견딜만 하다.
12시간의 비행보다는 수시로 담배를 피울 수 있어 좋긴 하지만 비행기로 2시간이면 올 블라디보스톡을 24시간을 항해한다는 것은 지루하긴 지루하다.
멀리 블라디보스톡 항구가 보인다. 좀체 읽을 수 없는 러시아어가 보이고 유럽풍의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항구에는 군함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함정과 선박이 함께 보이는데 항구의 바닷물은 우리나라 서해바다보다 훨씬 맑고 깨끗하다.
다만 갈매기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이상하다고 느낄 정도이다.
출국 심사대에서는 러시아여권소지자와 외국인이 분리되어 항구 밖으로 나간다.
2017년은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한지 80주년이 되는 해.
연해주의 첫 관문 블라디보스톡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환경국제전략연구소/김동환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