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9월/여름이 지나간 자리/집단 이기주의의 승화-

칼럼-9월    

여름이 지나간 자리

-집단 이기주의의 승화- 

더위가 떼거지로 몰려와 힘들게 하더니 들판에서는 고추가 발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산으로,바다로,계곡으로 혹은 하늘을 날아 먼 이국땅으로 여름 피서법은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올 여름 가뭄으로 이상기후와 식수걱정마저 했는데 낯짝을 드러냈던 저수지도 집중호우로 석양에 금빛 잔살로 출렁인다.

우리 사회도 점차 예약문화가 정착되어 간다. 2인용 하룻밤에 9만원하는 주문진의 경복궁이란 한옥팬션 주인장과 잠시 대화를 했다.

주문진에도 이십여 년 전만해도 기와집이 여러 채 있었지만 한옥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데 교항리쪽으로 가면 그럴싸한 한옥집 팬션이 있다.

고을 원님인 사또가 기거하던 한옥정도의 건강한 풍체이다. 여기저기 폐가가 되어가는 역사적 존재들을 주워모아 평(3.3㎡)당 1천만원 이상의 돈을 들여가며 복원한 한옥이란다.

호박죽에 동치미국을 마시면서 막걸리가 몇 순배 돌자 덜컥 질문을 한다.

제일 받기 싫은 손님이 누구인지 아느냐는 질문이다. 잠시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지만 딱히 떨어지는 집단이 생각나지 않는다.

청춘의 상징인 우리의 군인아저씨들만 오면 여기 저기 술 마시며 족구등을 하면서 한밤도 낮처럼 자유분방하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는 그 행동반경만큼이나 지저분하고 청소아줌마의 일거리가 서너배 증가한다.

또 다른 무리는 자전거를 타는 싸이클족이다. 자연을 만끽하며 고향을 떠나 허덕허덕 주문진까지 도착한 이들 집단은 땀번벅이 된 몸을 씻지도 않고 그대로 여기저기 널부러져 잠이들고 만다. 그들이 떠난 자리는 모든 이불들을 세탁해야만 한다. 땀 냄새가 고약하기 때문이다.

매우 고약한 집단들이다. 또 다른 집단으로는 아이들을 동반한 젊은 부부층이다.

자유분방한 아이들이기에 간만에 묶여진 일상에서 탈출하여 또래의 아이들과 장난을 치고 싶은 것은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상대에게 피해를 주거나 재물을 손상시키는 행위에서는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하고 잘,잘못을 부모들이 가르쳐줘야 진정한 산교육이 된다.

그러나 부모들은 아이들의 잘못을 꾸지람조차 거부하고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 정중한 사과도 없이 떠나 버린다. 언쟁이라도 있으면 그날로 온통 SNS에서는 비방의 대자보가 나돌아 다닌다.

주인장의 경험적 기록을 통한 통계학적 해석은 우리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흠찢 놀라기도 하고 민망하다. 나 자신도 돌아보면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자라서 정치인으로,공무원이나 외교관으로 기업인으로 성장하면 과연 상대를 배례하고 상생적 사회를 조성할 수 있을까. 부정적 시각이 더 크다.

오늘의 세태는 개인의 고유한 가치와 기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경향이다. 공동체와 개인의 연결 관계나 공동체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진다. 개인주의는 매우 부정적인 모습으로 이 사회에 검은 파장을 일으킨다.

반면 가장 신사적이고 우대받을만한 반가운 손님은 오토바이족이라고 한다.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오는 그들은 서로가 방값을 내려하고 술도 고급술에 청소아줌마들에게 팁까지 주고 주변을 말끔하게 정돈하고 떠난다.

주변을 깨끗이 정돈하고 떠나는 그들이 다시금 기다려진다고 한다.

나그네들에게 정겨운 주막이 그리워지고 주인장은 그리운 손님을 반갑게 기다리는 그런 세상은 없을까.

냉장고는 가득차 썩어가도 나눌 줄 모르고 지식은 공유보다는 우월적 지위로 상대를 윽박지르고 펌하하기 일쑤다. 뇌물을 삼켜도 뇌물인지 모르며 돈이 있어도 돈을 쓸 줄 모른다.

전라도 무안에서 70평생 땅만 지키며 살았던 사람이 위암에 걸려 병치레를 하면서 친구들에게 던진 말에는 가시가 돋쳐 있다.

슬금슬금 여기저기서 땅을 팔라고 하는데 땅을 팔라는 사람들은 모두가 정치인들이고 청와대나 국가 고위직 공무원들이었다고 한다.

자신은 끝까지 버텼더니 어느날 도청이 들어서고 보상금으로 100억원의 현찰을 거머쥐어 졸지에 100억 졸부가 되었다.

막상 많은 돈을 움켜 쥐어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른다고 고백한다.

고작 친구들의 술값을 내고 집과 자동차를 바꾸는 정도이다. 돈을 사회적 공헌사업으로 출자하고 싶어도 도둑놈(정치,고위직)들이 또 챙겨갈까봐 염려된다고 한다.

하긴 죽음에 임박해서 후회하고 반성하고 삶을 돌아보며 다시 태어나면 이렇게는 살지 않으리라 자탄하는 인물도 있다.

스티브잡스의 병상 일기로 마감한다.

-나는 사업에서 성공의 최 정점에 도달했다. 다른 사람은 내 삶이 성공의 전형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일을 떠나서는 기쁨이라고 거의 느끼지 못했다. 부자라는 것이 내게는 그저 익숙한 삶의 일부분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 병석에 누워 나의 지난 삶을 회상해보면 내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고 주위의 갈채와 막대한 부는 임박한 죽음 앞에서 빛을 잃었고 그 의미도 다 상실했다. 이제야 깨닫는 것은 평생 배 굶지 않을 정도의 부만 축적되면 더 이상 돈 버는 일과 상관없는 다른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건 돈 버는 일보다 더 중요한 뭔가가 되어야 한다. 인간관계가 될 수 있고 예술일 수도 있다. 어릴적부터 가졌던 꿈일 수도 있다.(중략) 누구라도 수술실에 들어갈 즈음이면 진작 읽지 못해 후회하는 책 한권이 있는데 이름하여 ‘건강한 삶 지침서’이다.-스티브 잡스-

(길샘 김동환:환경국제전략연구소장/시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