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칼럼- 외부로는 지진,내부는 김영란법
더위가 가시고 대한민국에서는 가장 기후가 좋은 낭만적 10월인데도 한껏 몸과 마음들이 위축되어있다.
경주지진은 한반도를 위협하고 정치적 대치는 이제 만성이 되어 어떤 말이나 약속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저 과거 한 시대 요즘 TV의 사극 옥중화에서 비춰지고 있는 처참한 민초들의 생활상속에 의적 임꺽정이,80년대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던 대도 조세형이 슬그머니 생각의 저편에 자리 잡는다.
장발장,괴도루팡,파피용,그리고 임꺽정,홍길동,조세형.
왜 그들이 오히려 자랑스럽고 은근한 연민과 때로는 감사와 아쉬움이 혼재되어 있는지,가을 낮빛에도 쉽게 데워지지 않는 끝없는 질문과 풀리지 않는 의혹으로 밤잠을 설친다.
현대사회의 대도 조세형은 82년11월 체포당시 압수품은 마대자루 2개 분량에 물방울 다이아는 물론 루비 사파이어반지,피아제,카르티에 시계등 명품들이 즐비했다.
명사의 집에서 훔친 물방울 다이아 2개는 5,75캐럿, 5,6캐럿으로 세간을 난데없이 물방울 다이어로 번득이게 했다.
하지만 물방울이 숨어 지내던 명사의 집인 재벌가 병원원장과 국회의원은 끝내 공개되지 않았다.
조세형은 부잣집만 골라 도둑질을 했지만 서울역 노숙자나 걸인등에게 훔친 돈 일부를 주기도 했다. 이 사건은 한갓 도둑질이 국회에서 최고 이슈가 되고 본회에서 야당의원이-수억 수천의 귀금속을 집에 숨기고 사는 사람이 대도냐,아니면 조세형이 대도냐.-고 총리에게 따지기도 했다.
하여간 그 살벌한 전두환정권에서 불거진 물방울 다이아는 귀엽기조차 한 사건이다.
김영란법이 작동되면서 만물이 익어가는 가을은 오히려 곤궁기의 초봄과 같이 썰렁하다.
10월들어 다양하게 펼쳐지는 각종 행사나 학회활동도 위축되어 있다.
임원들 회의에서도 만찬은 각자 카드 결제를 해야 하니 식당은 입구가 아니라 출구에서 길게 늘어서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발표자,사회,토론자들의 강사료의 상한선도 기관마다 제각각이다.
혼례식이나 초상집에 화환을 보낸다는 것은 파파라치의 형제지간인 란파라치의 표적대상이고 택배로 온 선물상자도 주소와 이름이 명시되어 손쉬운 입갑이다.
일부 교수들은 강의 20주년 행사를 실행일인 9월 28일 이전에 혼비백산 치러 예상된 거액의 축의금을 챙기게도 했다.
그렇게 올 9월 28일은 험준한 산맥보다 큰 격차를 보여준다.
이전에 행사를 치룬 사람들은 예상되로 경조사기금을 챙겼으나 이후의 예식장과 장례식장은 화환은 물론 봉투가 헐거워진 현상이 뚜렷하다.
하객이나 조문객에게는 오히려 심적 부담이 적지만 과거 자신이 뿌렸던 본전생각에 울화통도 나리라 본다.
봉투를 내야 하나, 화환을 보내야 하나,번거로운 고민도 오만상을 찌푸리게 한다.
김영삼정권시절 졸지 금융개혁이 전격적으로 단행됐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가명을 쓰지 못하는 금융실명제보다 더 파격적이고 그 여파가 파상적이다.
금융실명제가 있는 자들의 압박이었다면 김영란법은 중,서민들에게 그 기울기의 강도가 더 높고 번짐효과가 크고 넓다.
각종 개인정보 누출에 전전긍긍하는 국민들에게서 란파라치의 존재는 물론이고 아군이 적군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전 국민이 감시자로 돌변하게 했다.
이런 사회적 진통 끝에 김영란법이 정착되면 대한민국 정부는 신뢰를 되찾을 수 있고 높은 자들은 진정 청렴해질 수 있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당근이며 솜사탕같은 달콤한 잠을 모처럼 청할 수 있다.
희망적 바램을 간직하면서도 아직도 그 갑질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다.
기관장과 국회의원을 지닌 모의원은 기관장시절 연구사업비로 백화점에서 향수와 기념품을 사는 것은 김영란법에 해당되지 않는지.
창조적 문화융성을 기치로 미르재단의 설립에 수백억원을 거둔 행위는 김영란법에 해당되지 않는지.
현대스틸 정일선사장의 운전기사에게 감정과 영혼까지 팔 것을 강요한 행위는 김영란법에 저촉되지 않는지.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국가유공자 등 보훈대상자들을 보호해야 할 보훈처가 보훈대상자들이 집을 빼앗기고 신용유의자로 등록되는 것을 방치하는 것도 모자라 추심업체로 전락한 보훈처의 행태는 영란법에 결코 저촉되지 않는지.
망해가는 조선사업을 위해 선박협회는 대기업 선박회사들에게 매년 접대를 해도 관행이라면 김영란법은 해당되지 않는지.
하도급법 위반 행위가 줄어들기는커녕 사업자들이 여전히 반복적으로 법을 위반하는 현실에 대해, 공정위의 제도 운영은 김영란법 위배를 조장하는 것은 아닌지.
국회의장 부인의 관용차에 백화점 최고급 고객카드를 발급받는 것은 김영란법의 치외법권인지.
청렴성과 도덕성이 생명인 국민권익위원회 청렴연수원장이 품위유지위반으로 해임되는 일은 없어질지.
56점이라는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서 37위인 우리나라가 적어도 대만 수준의 60점 이상은 받을수 있는 그날은 올 것인지.
16년 가을밤은 여전히 몽상처럼 임꺽정의 화신이 오락가락하고 가을볕에 고추가 익어가듯 조세형의 물방울 다이아의 정체가 꿈길처럼 펼쳐진다.
(김동환/환경국제전략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