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로수 은행나무 두어 그루가 눈발에도 노란 잎을 달고 겨울바람을 맞고 있다.
책갈피에 추억처럼 남겨 놓아도 영혼의 불빛처럼 변하지 않고 간직하는 고운 색깔은 봄꽃이 아니라 가을 단풍임은 분명하다.
이미 숲을 이룬 나무들은 모든 계절의 흔적을 털어버리고 깊은 동면 속으로 젖어 들었다.
34살에 흑인 최초의 변호사가 되고 44살부터 72살 까지 27년간 국가 반역죄로 복역하고 75살에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며 76살에 남아공 첫 흑인 대통령이 된 넬슨 만델라.
81살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13년 12월 5일 95세의 나이로 요하네스버그 자택에서 타계하였다.
인생을 명품으로 다듬어 갔기에 전 세계인의 추도 물결이 남아공으로 몰렸다.
먼먼 타국 대통령의 죽음에 아쉬움이 가시지 않는 가운데 얼마 전에는 한국의 참군인 채명신 장군이 떠났다.
육사 5기로 5,16 쿠테타에 동참하고 39살에 초대 주월 한국군 사령관.
냉전시대의 장군으로 스스로 사병 전사자 묘역인 한 평 땅에 묻혀 화려함보다는 죽음 앞에서도 겸손하게 떠났다. 계급사회, 차별적 열등과 우월의 시각 속에 살아가고 살아온 많은 이 땅의 사람들의 정신을 잠시 일깨우게 한 어른이었다.
참 군인으로 명품의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간 인물임은 분명하다.
‘에이전트 오렌지’작전으로 명명되는 월남전 고엽제사건으로 본인은 채명신 장군을 만나게 된 소중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88년경 미국 재향군인회가 간행하는 협회지에는 월남 참전 미군 에이전트 오렌지 작전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해 주겠다는 내용이 실렸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월남참전자들의 동향을 추적 취재하던 시기였다.
지금은 고인이 된 연세대 예방의학과 교수며 우리나라 환경 원로 1세대인 권숙표 박사가 본인에게 우리나라도 파월장병이 많으니 이 자료를 참고하여 취재해 보라는 특명이며 훌륭한 제보였다.
이후 술자리에서 기업인들과 그동안 만났던 인물들의 주변에 월남전 이야기가 안주처럼 나왔던 기억을 되돌려 보았다.
그 중에는 귀국하여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친척들이 있다는 이야기의 끝을 잡아 그들의 행적과 주변 동료 군인들의 근황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15명 정도의 병상일지는 대체적으로 피부발진과 심한 기침 후 폐염증세, 하반신 마비, 신체적 고통 등 비슷한 증상과 사인이 명확치 않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미국 재향군인회의 기사내용과 상당히 일치했고 이를 근거로 우리나라도 월남 파병 군인 중 제초제로 인한 피해자가 많다며 사망자의 성명과 병명을 나열한 기사를 내 보냈다.
이 자료를 제시하면서 처음으로 후암동 자택에서 채명신 장군과의 인터뷰를 했다.
미국 가족들과 생활하다 귀국한지 며칠 뒤였다.
채장군은 담담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첫 질문은 과연 채장군은 초대 주월 한국군 사령관으로서 에이전트 오렌지 작전에 대해 알고 있었고 알았다면 작전수행에 어떤 논의가 사전에 있었냐는 요지였다.
채장군은“나는 당시 이 작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다만 베트공과 주민들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작전지역을 제초제를 살포하여 시야를 넓히는 작업을 수행한다는 작전 동향보고만 받았다고 기억한다.”고 답했다.
에이전트 오렌지 작전으로 명명된 제초제는 드럼통에 오렌지색 줄이 그려져 있고 노란색 글씨로 화학물질형태 오렌지라는 글자가 적혀 있어 오렌지작전으로 명명했다.
이후 파월장병들도 병충해 박멸을 위해 이 제초제를 스스로 살포하기도 하여 그저 흔한 미국의 최신 잡초 및 병충해 제거 화학약품의 일종 정도로 알았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나 사전 지식은 알 수 없었으며 미군이 이에 대해 명확한 사전 예방조치나 관련 자료를 제시해 주지도 않았다는 답변을 들었다.
지금부터라도 이에 대해 국내에서도 적극적인 자료조사와 연구가 절실하다며 어려운 취재를 한다고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월남파병전우회를 중심으로 고엽제관련 단체가 설립되고 다양한 배상문제가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정부나 제조회사가 우리나라 고엽제 피해자들에게 미국 재향군인회 정도로 피해보상을 해주지 않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렇게 인터뷰를 통해 담담함과 강직함, 그리고 솔직한 대화는 채명신 장군의 존경스러운 또 한 면을 발견하게 된 계기였다.
전쟁은 끝났지만 67~8년경 월남에서 사용하던 그 화학물질이 78년경 55갤런 드럼통을 우리나라 캠프캐럴 구역에 참호를 파고 묻었다는 사실도 한국을 방문한 스티브 하우스의 증언에 의해 사실로 밝혀진지도 몇 년 전이다.
단풍든 은행잎은 책갈피에 간직하고 싶은 고운 색상인데 지독한 화학물질인 고엽제를 노오란 물감으로 위장하여 작전 최고지휘자도 모르게 수색대 앞에 공중살포한 제초제.
채명신 장군을 떠나보내며 미국이 아직도 우리를 과연 우정의 친구로 동반자로 진정성을 가지고 대하고 있는지 다시금 의문을 낳게 한다.
자연재해로 인한 지구의 위기에 대해 미국 부통령 엘고어는 「불편한 진실」을 출간하면서 인류문명의 생존능력이 지구생태계의 지속여부가 경각에 달렸다. 과연 인류는 우리가 사는 행성에 어울리는 존재인가라고 문제의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
넬슨 만델라와 채명신 장군을 떠나보내는 2013년 12월을 마감하며 명품인생의 구도를 그려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