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을 정점으로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석가탄신일, 5·16 혁명 등 부제가 붙은 날들이 지나갔다.
사람들에 의해 명명된 기념일들이 괜스레 5월을 혼란스럽게 한다.
올 4월은 이상기후로 꽃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겨울을 간신히 털어 냈는데 5월은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의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의 유희가 온 나라를 부끄럽게 하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초 남대문 화재가 밤을 밝히더니 국내 첫 여성대통령의 한미 정상외교를 한순간에 침묵으로 전환시켰다.
성범죄를 중죄로 다스린다는 미국의 수도에서 펼쳐진 윤창중 성희롱은 IMF위기보다 더 격정적이고 정신을 잠시나마 상실케 한 단순 충격파이기도 하다.
호텔 방을 청소해주다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의 신고만으로도 체포되어 구속당하고 보석으로 풀려난 현직IMF총재였던 프랑스인 스트로스 칸의 충격파도 60데시벨(db)을 넘지못했다.(한국의 소음기준 60데시벨)
“靑山裏 碧溪水야 / 水易感을 자랑마라 / 一到滄海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明月이 滿空山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조선시대 기생 황진이는 토굴에서 10여년간 면벽수행을 했다는 지족선사를 한방에 눕게 만들었고 화담 서경덕을 찾아가 온갖 유혹을 하였지만 결국 동침까지 성공하지 못하고 시 한수를 남기고 말았지만 서화담은 성추행으로 황진이를 고발하거나 당시의 사회적 문제로 비화시키지는 않았다.
서화담과 황진이는 스승과 제자로 지내면서도 애틋한 그리움은 시로 환생하여 바람소리에 님이 오나 기다려지고(서화담) 낙엽 떨어지는 소리에 어쩌지 못하는 심정(황진이)을 고백한다.
하지만 이시대의 윤창중은 쾌락의 천당소리도 듣지 못했고 하룻밤 인연의 아쉬움을 이메일로도 남기지 못했다.
그저 요란한 흙탕물만 온천지에 뿌리고 말았다.
이런저런 상념을 털어 버리고자 경영학자들끼리 강촌으로 나들이를 갔다.
김오담, 이성호 교수, 권원오 박사, 조순우 박사 등 미래 경영학자들의 모임이다.
우리의 삶에서 과연 가진 것만큼 행복한가. 많이 가진 부유한 사람은 더 행복할까.
그렇다면 많이 갖지 못한 사람은 부자들보다 더 불행한가.
행복과 불행의 조건은 과연 어디서부터 찾을 수 있는가.
우문을 던져가며 떠난 강촌이다.
언제나 먼발치에서 스치듯 지나간 강촌은 30년도 더 된 젊은 날 엠티 장소였지만 그렇게 소소한 추억을 만들지는 못했던 곳이다.
강촌역에서 옛길로 1.5키로 정도 강변을 따라 백양리 방향으로 달리면 구릉과 어울려 소담스럽게 지어진 시립대학교 연수원에서 하룻밤을 동침했다.
산과 어울려 담백하게 설계한 연수원은 마치 수도원처럼 초연하게 지어져 오고가는 이들을 경망스러움에서 정갈한 마음으로 되돌리게 한다.
시립대 전 이상범총장의 역작이지만 연간 적자가 2억원이나 된단다.
토론과 삼겹살파티로 온밤을 지새우고 발래골식당에서 잡어매운탕으로 속을 달랬다.
상수원보호지역인 강촌에는 24명의 허가받은 어부들이 있는데 그중 한분이 식당을 운영하는 곳이다. 조업허가권은 매매도 된다는데 매매가가 이곳은 7천만원, 소양강조업권은 1억 5천만원정도 한다. 개인택시 매매가와 비슷하다.(서울 8~9천만원, 제주도 1억2~3천만원)이곳에서는 순수한 토종 물고기를 먹을 수 있고 북한강 다슬기와 모래무지도 맛볼 수 있다.
쏘가리는 잘 안 잡혀 턱없이 비싸고 매기는 타지에서 전수하기도 한단다.
강촌역에서 출발하는 8km의 레일바이크와 강변을 따라 자전거타기, 강촌번지점프, 패러글라이딩 등 다채로운 놀이와 함께 530m의 검봉산 등산 등 의외로 청춘과 장년들의 어울림이 조화되는 장소이다.
일행은 서경덕, 황진이, 박연폭포의 송도삼절은 아니지만 강촌에서 겨울철 빙벽등반으로 유명한 구곡폭포를 찾았다.
금강산의 구룡폭포, 설악산의 대승폭포, 개성의 박연폭포(산성폭포)를 일컬어 우리나라 3대 폭포라 하지만 해발526m의 봉화산에 아홉 굽이를 돌아 떨어지는 구곡폭포도 담소를 나누며 오를 수 있는 다정다감한 곳이다.
오르는 길목에 다람쥐가 다가와 뭐라 말을 붙인다.
이곳 다람쥐는 인간과 친숙한 사이가 되어 있나보다.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아침 이슬에 몸단장을 끝내고 손님을 맞는다.
오르는 길목에 아홉 개의 쌍기역자음을 이용한 스토리밸링은 재미난 또 하나의 테마를 이끌어 낸다.
꿈, 끼, 꾀, 깡, 꾼, 끈, 꼴, 그리고 맴시와 솜씨를 상징하는 깔, 아름다운 마무리의 끝을 읽으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나의 꿈은 어떻게 변절의 변절을 거듭했으며 나의 끼는 이 세상에 어떤 역할을 해오고 나의 깡은 얼마나 이 세상을 바르게 버팀목으로 굳건히 존재했을까.
그리고 나의 끈은 어떤 꼴로 형성되었을까 생각의 끝에 아홉 굽이를 돌아 쏟아지는 폭포소리가 귀를 뚫리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