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호 전환경부차관의 자전적 –공직심서-연재 13
3.4. 시스템으로 일하라
우리나라에 다수의 대기업들이 있지만 삼성만큼 많은 동경과 지탄을 동시에 받는 기업도 없을 것이다. 독보적인 시장 점유율,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 삼성이 법인세를 내지 않으면 국민들이 소득세를 몇 배 더 내야 한다는 각종 통계까지, 삼성이 한국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심대하다고 말할 수 있다. 삼성이라는 기업을 비난하는 이들조차도 삼성이 일하는 방식을 따라가고자 학습하곤 한다. 물론 삼성의 업무방식이 최고라고 말할 수는 없다. 회사마다 각자의 문화가 있고, 사람마다 일하는 스타일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보다는 조직이 움직이면 더욱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한 사람이 일하는 것보다 열 사람이 힘을 합치면 그 성과는 10이 아니라 20이 될 수도, 100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이미 역사적으로 여러 사례에서 증명된 바 있다. 더군다나 정부 정책과 같은 큰일은 여러 분야에 걸쳐 많은 사람들의 능력과 열정이 모아져야 비로소 성과를 낼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어느 한 부처의 특정 단위부서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여 부처 전체 또는 몇 개 부처가 협력하여 일을 추진해야 할 때도 있다.
한 부서 내로 국한하여 보더라도 부서 구성원 각자의 맡은 업무는 다를지언정 큰일을 할 때는 맡은 업무분야를 떠나 전 부서원이 힘을 합치면 일이 훨씬 수월해질 수 있다. 한 부서 내의 일이더라도 각자가 맡은 업무의 가장 바쁜 시기(peak time)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때그때 인력을 적절히 재배치하여 활용하면 부서 전체적으로 업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직원 각자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자신의 에너지를 연중 고르게 쏟아 부을 수 있기 때문에 건강에도 좋을 뿐 아니라 여러 업무를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 능력있는 부서의 장은 이와 같이 직원들의 역량을 가장 다급한 현안이나 바쁜 업무에 집중하도록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조직 장악력이고, 시스템적으로 일할 줄 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잣대가 된다.
시스템적으로 일하는 것이 습관화가 되어 있지 않은 과(課)단위 조직에서 과장이 처음에 다른 직원의 일을 돕도록 지시하면 대부분의 경우 불평·불만이 나오게 된다. “왜 남의 일을 내가 해야 하는가? 남의 일을 도와줬다가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을 지는가?” 등등 이유도 많다. 그러나 직원들과의 충분한 대화를 통해 이해와 협조를 구하면 과장으로서 풀지 못할 문제는 아니다. 대부분 직원들은 다소간 불만이 있더라도 과장이 진정성을 갖춰 설득하면 따르게 마련이다. 그렇게 협업(協業)을 통해 얻게 되는 성과와 효과를 과원들 모두가 누리게 되면 다음부터는 협업체계를 시스템화하는 것이 순조로워진다.
한 부서가 감당하기 힘든 일은 부처 내의 각 부서가 협력할 수 있도록 장·차관이 리더십을 발휘하여야 한다. 기획예산, 조직, 법제, 정보화와 같은 지원 부서를 적절히 움직이도록 해야 하고, 산하기관도 조력할 수 있도록 일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때로 일처리가 지연되고 있어서 원인을 알아보면 담당직원의 업무량이 너무 많아 업무에 부하(負荷)가 걸려 어렵다면서 직원을 충원해줄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부서 또는 부처 전체직원의 업무량이 과다한 경우도 있겠지만 인력과 업무량 간의 적정 배분이나 시간적인 우선순위의 설정 없이 마구잡이로, 때로는 수동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데서 오는 조직, 인력, 시간 간의 miss-match에 의한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업무량이 늘면 충원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그 전에 일하는 방법과 시스템의 개선을 통해 가능한 부분은 없는지 항상 고민하고 노력하는 자세가 먼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