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환경부-기획재정부-공정위-국회
누구 장단에도 발 맞출 수 없는 대한민국 정부
온 세상이 들끓고 더 많은 희생자가 나와야 사과
19대 마지막 임기를 한달 남겨두고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 대책과 관련, “정부가 피해자와 가족의 고통과 슬픔을 덜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커다란 인재로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정부 책임을 통감하고, 큰 고통을 겪는 피해자와 가족 앞에 고개를 들 면목이 없다”며 거듭 고개를 숙였다.
윤 장관은 해당 기업에 구상권 청구도 했는데 소송에서 이기면 피해자에게 배상이 이뤄질 수 있다며 신청 피해자 조사에 대한 판정을 신속히 제시하고, 피해 인정 기준을 확대해 지원하는 한편, 향후 유사 사고 재발방지 대책도 마련할 것이라며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관련해 피해의 인정기준을 확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 13년 12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의 첫 만남에서도 내년도(14년) 예산에서 피해자 지원에 107억원을 편성한 것에 대해 “피해자 가족을 도운 후 소송에서 책임이 밝혀지면 업체에 구상(求償)하는 개념이고, 기획재정부와도 그런 조건으로 예산을 잡았다”며 “국회 예결위를 거쳐 (예산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언급한바 있다.
그러나 이보다 5개월전인 7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는 “사람에게 투약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후 부작용이 생겨 용도를 제한하거나 출시 인허가를 취소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인간의 예지능력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가습기살균제도 그런 범주의 문제이다. 제조물책임법을 보면 현존 과학기술 지식으로 알 수 없는 것이라면 독일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면책을 해준다”고 말해 피해자가족들에게 아픔을 던져주기도 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책임에 대해선 “ 국가의 책임인지, 아니면 유통자의 책임인지 이런 문제가 생긴다. 제조물책임법으로 보면 그걸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고 지금 국가와 제조사, 유통사 상대로 3건의 소송이 걸려 있는데 그 소송에서 법원 판결이 나오면 판결대로 가야한다”면서 “정부로서는 여전히 현실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에 특별법을 만들기보다는 현존법을 수정 보완해서 해결할 방법이 있을 것이고 부처 간 논의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시원한 해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 분들을 도와주기 위해서는 해법을 찾아야 하는데 8월까지는 방법이 있으면 방법이 있다고 뭔가 내놓을 것이고 없으면 없는대로 국회와 논의를 해봐야 한다"고 말한바 있다.
이같은 발언은 국회 환노위 상임위에서 거센 질타성 발언이 여,야 동시에 촉발되기도 했다.
가습기살균제의 피해 예측에 대해 "현대 과학으로는 알 수 없다"는 발언에 심상정 의원은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에서 작성한 3세 영아의 사망진단서를 언급하며 "사망진단서에 엄연히 '가습기살균제에 의한 폐섬유화로 인한 사망'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는데도 현대 과학으로 규명이 힘들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질타했었다.
2013년 4월3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예결소위와 전체회의는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예산을 당초 제안한 200억원에서 50억원으로 대폭삭감하여 의결했다. 당초 이 문제는 환노위 전체합의로 의결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환경부가 법적근거가 없다며 반대했고, 새누리당의 이완영의원도 같은 이유로 반대하여 반대 소수의견을 붙여 통과시킨바 있다.
14년 8월 서울고법 행정6부(부장 윤성근)는 옥시레킷벤키저가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 명령 등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매 당시 가습기 살균제 주성분의 안전성이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는데도 회사 측은 인체에 안전하다고 사실과 다르게 표시했고, 결과적으로 폐손상으로 사망한 피해자가 발생했다”며 공정위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시정명령 당시 제품 판매가 중단된 상태였다는 옥시 측 주장에 대해서는 “해당 제품에 노출된 불특정 다수에게 건강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보기 어렵고 추가 피해자가 나올 우려도 여전해 잠재적 피해자와 대중에게 허위·과장 광고했다는 내용을 알려야 할 공익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2011년 4월 원인을 알 수 없는 폐손상 환자들이 생겨나고 수십 명이 숨지자 같은 해 8월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 살균제를 위험 요인으로 추정하는 역학조사 결과를 내놨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6개 제품에 대해 강제수거 명령을 내렸고, 1년 뒤 공정위는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에 ‘인체에 안전한 성분’이라고 표시하는 등 허위·과장 광고를 했다며 시정 명령과 함께 과징금 5100만원을 물린바 있다.
환경부의 가습기살균제 피해 2차 조사에서는 1차 조사 때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던 2명이 재판정을 거쳐 지원금을 받게 됐으나, 신규로 신청한 169명 중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것은 49명으로 1차 조사에 이어 2차 조사에서도 기존에 확인된 급성 폐질환 외의 건강피해는 아직 연구가 미흡하다는 이유였다.
「환경보건법」은 환경유해인자로 인한 국민의 건강피해를 예방·관리하기 위한 국가와 지자체의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규정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분명히 동법 제20조 및 동법 시행령 제13조의2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환경부의 피해지원 대상 선정은 유해화학물질이 국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관리하고 그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적절한 수준에서 결정된 것이 아니라, 철저히 재정적 고려로 결정됐다는 판단이 강하게 색인된다. 환경보건의 책무를 갖는 환경부의 관점이 아니라 안전예산을 삭감하고 규제완화를 주창하는 기획재정부의 관점으로 행정이 움직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태를 막기 위해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과 「화학물질관리법」을 제개정한다고 한 의미속에는 유해한 화학물질이 안전한 생활제품으로 둔갑하여 산모와 영유아가 있는 집에 닿을 때까지 국가의 시스템은 작동되지 않았다.
피해지원 마저도 구상권을 방패막이 삼아 최소한도에 머물고 옥시가 기탁한 50억원마저 2년동안 환경산업기술원 통장속에 숨겨져 있었던 점은 태안 해안 유류사건시 피해보상액이 생활고에 시달리는 어민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수년동안 예치되어 있었던점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하나이나 관련 부처간 상충된 의견으로 국민들 입장에서는 관련 부처들을 향해 똑같은 주장과 의견을 제출해야 하는 번거로움의 연속이었고 부처간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는 점도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중요한 정책방향의 모순이 그대로 반영된 사건이다.
여기에 국민의 손으로 뽑은 국회마저 전문성 부족과 관련안건의 신중한 연구가 없어 정부에 의존하여 법과 예산 모두를 국민편의보다 정부측 의견에 손을 들어 주는 것이 우리나라 정부의 현실이다.
(환경경영신문/서정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