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전 환경부 사무관으로 공직활동을 하는 모습을 지켜 본 이후 나는 그에 대해 단 한 줄도 조명해 본적이 없다. 행정고시 22회로 환경부와 인연을 맺고 환경정책과장, 수도정책과장과 대기보전국장을 거쳐 해외 파견을 기다리던 중 청와대 환경비서관으로 4년간 근무하다가 공직을 마감한다.
퇴임 후에는 수도권매립지공사 사장, 강원풍력(주) 사장을 끝으로 지금은 생물분류기사로 자연을 찾아 야생화 사진을 찍고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환경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삶을 살아간다. 그런 그가 최근 야생화 사진이 담긴 시집을 간행 시단의 문을 두드렸다. 행정고시로 1급을 지낸 인물이 뚱딴지같이 생물분류기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전국을 돌며 꽃들과 교감을 나눈다는 것도, 시를 쓴다는 것도 참 별종 중에 별종이다.
진달래, 버들강아지, 미황사 동백꽃, 동의나물꽃, 곰배령 꽃멀미, 귀롱꽃, 당개지치, 찔레꽃, 미모사, 달맞이 꽃, 뚱단지꽃, 산앵두, 억새밭, 능수버들, 섬진강매화, 민재봉산철쭉, 물솜방망이꽃, 대나무, 꽃창포등 꽃들의 노래를 비롯하여 계절이 던져주는 화두와 전국에 흐드러진 자연의 소리 등 75편의 시를 묶어 세상에 내놓았다.
삭풍 몰아치는 눈 속에서도 / 오는 봄 놓칠세라 새 눈 틔워 겨울 나는 / 호랑버들처럼 기다릴 터이다 / 슬프게도 아득한 봄을(그리움에 떨며 중에서)
흐르는 달빛에 스치는 찬 바람 / 한 잎 남은 가랑잎마저 떨군다(밤바람 얼어도 봄 꿈은 자란다 중에서)
채우고 채워도 모자람이 커져가는 / 그 묘한 것이 정이구나 / 있을때엔 떠나고 싶고 / 떠나야 할땐 머물고 싶은 / 그 묘한 것이 정이구나(바람따라 낙엽따라-대관령을 떠나며 중에서)
봄에 찾아와 대관령을 떠나면서 가슴에 울렁이는 그 묘한 감정을 시어로 던져주고 있다.
이 시집은 지난해부터 올 사이 2년간의 심경을 담고 있다. 그런데 왠지 슬프다. 분노도 삭힌듯하고 억새풀과 서리, 달빛과 창공을 나르는 철새들의 허무스러움으로 얼핏 숨겨진 내면을 보여준다. 위에 소개한 시들을 읽으며 우리시대의 외로움 넘치지 못하는 정, 씻겨지지 않는 갈등과 고뇌의 자의식을 엿보게 한다. 1급까지 한 그가 왜 이토록 슬프고 외로운 현실인 동토의 땅에서 끝없는 몸부림을 해야 했을까.
그는 전라도 장흥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서울서 일생을 다듬어 갔다. 국민의 정부 시절 그는 본부 국장에서 실장, 장차관을 향한 길목에서 청와대 환경행정관으로 발령받는다. 당시 그는 해외 파견을 준비하면서 돌아와 환경부를 이끌 중요 인사로 손꼽혔던 인물이다.
그런데 현실은 아픔과 환희의 헷갈림 속에 그저 무지개빛으로 고통 속에도 쉬어가자는 마음만 다져보게 되는 세상의 허허로움을 진하게 맛본다. 환경비서관이란 차관 서열 1위에서 정권이 바뀌면서 그의 인생은 소풍 길을 마감하듯 슬프게 작별한 아득한 봄을 기다리는 자연 친화적 인물로 탈바꿈한다.
그는 지금 우리나라 정부와 지자체 관급 공사의 모든 녹화사업에 외국의 풀씨를 뿌려가며 녹화사업을 하는 현장을 고발하고 있다. 국산 토종 식물을 우리나라 인간이 스스로 멸종시켜가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건물을 들어서면서 느끼는 영산홍과 철쭉, 그리고 외국산 꽃들, 도무지 우리의 야생화를 발견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는 수도권매립지 공사 사장시절 우리나라 공공 공사 마당에 국내 최초로 야생화를 심었고 그 씨는 오늘날 야생화 축제로 거듭나게 했다.
야생화 사진과 시를 쓰는 작업도 대관령 풍력발전소를 책임지는 사장으로 근무하면서 본격화 한다. 하지만 환경부 근무시절 묘하게도 자연보전을 책임지는 자연보전국장은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다.
의식의 수면위에 그는 비바람과 고통속 에서도 예쁜 야생화 꽃을 피어내고 매화꽃 향기를 맡는 건강한 의식이 움트고 있다.
찍어온 식물을 분류하고 영상에 담아 풀꽃지기의 메일을 주변에 퍼 나른다.
그가 만난 자연의 하루 하루를 시어로 담아 낸 흔적들을 더듬어 보자.
'쪼르르 숲들 쥐 한 마리 / 하얀 눈 비탈에 / 점,점,점 / 흰선을 그린' 적설 산중에서 하얀 도화지에 들쥐의 흔적을 점으로 노래하고 곰배령에서는 '하늘 처음 열리고 / 산 솟아 나는 날 / 일찍이 점지해 둔 / 만상의 꽃 천지'라며 현기증같이 멀미를 한다. 귀롱꽃을 발견하고 영원한 사랑을 만나듯 '설풍이 세차도, 까만 겨울밤이 길어도 / 하이얀 그리움은 지워지지 않았다'며 노래한다.
'하늘도 꽃을 피운다 / 크게 크게 꽃을 피운다 / 빨주노초파남보 / 하늘꽃을 피우는 무지개'는 꽃의 환생이라며 스스로 자신이 근무하던 드림파크에 억새밭을 조성하고 '그 억새밭에서는 하얀꿈이 일렁이고 고요와 평화가 흐르는 곳'으로 재탄생시킨다.
단풍의 계절 가을을 '산도 가을이면/홍역을 앓는다'고 화두를 던진다. 호수를 밟는 바람을 '겨울 하늘 하얀 눈썹달이 / 호수에 빠졌다/눈 서리게 하늘 만 쳐다 보다가 / 호수는 달을 품에 안았다'고 친 자연주의의 환경인으로 자신을 던져놓는다.
섬진강변의 매화꽃을 바라보며 '섬진강변 출렁이는 매화꽃 꽃바람 / 내 맘에 일렁이는 지랄같은 봄바람 / 행여 그이도 생각이나 할까 / 섬진강변 매화 꽃'을 보며 그리운 그이를 떠 올린다, '묵혀둔 그리움이 토해 낸 / 동강할미꽃이나 여행지 삼천포항에서는 남해바다를 / 잔 안에 가두고 / 우리는 바다를 마시고 용늪의 비로용담은 천상의 맑은 색깔로 꽃창포는 있을 곳에 있는 것이 / 참 멋인 것을' 새삼 깨달으며 산과 들,강을 찾아 온전한 자연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그는 오늘도 메모지와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