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물산업 시리즈_12

 

 정부와 민간의 역할과 협력의 관점에서 이탈리아의 수도산업을 살펴보면 중앙정부는 갈리개혁을 통해 수도사업의 통합과 민간의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당해 지역의 정칙적, 문화적, 경제적 측면 고려, 수도사업에 대한 통제권 유지, 당해 자기이익 실현의 가능성을 토대로 광역화 및 민간참여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특히, 지방공기업이 발달된 지방자치단체는 민간기업에 수도사업을 위탁하기보다, 공기업의 지분을 일부 매각하는 형태로 민간의 자본을 활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ACEA와 AMGA의 사례와 같이 지방자치단체는 최대주주의 지위를 유지함으로써 사업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권을 보유하려는 경향이 있다.
 영국의 사례와 유사하게 이탈리아의 수도산업은 지역적 환경이 산업구조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북부 이탈리아의 경우 중앙정부 주도의 물산업 구조개편 진행속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이 지역에 발달한 공기업과 지방자치단체는 수도서비스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를 강하게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이탈리아의 경우 광역지방자치단체가 상당한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어, 기초지방자치단체의 반대를 효과적으로 낮추고 있다. 따라서, 갈리개혁의 속도가 비교적 활발하다. 물 부족이 심한 남부 이탈리아의 경우 중앙정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ATO의 형성 속도가 빠르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수도사업에 대한 영향력 축소에 대한 거부감 등으로 인해 민간기업과의 양여계약은 오히려 활발하지 않다.
 수도산업 민관협력의 동인은 정부재정의 부족으로 인한 민간투자의 필요성이다. 앞서 기술한 유럽의 사례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1989년 수도사업 민영화의 배경은 1970년대 초반의 오일쇼크와 경제적 침체기였다. 경제침체기에 정권을 잡은 대처의 보수당 정권은 정부의 재정부담을 줄이기 위해 철도, 전기, 가스, 통신, 항공 등 제반 인프라스트럭처를 매각의 방식으로 민영화 하였고, 이러한 맥락에서 수도산업도 민영화의 대상이 되었다. 프랑스는 근대화 과정에서 부족한 중앙 및 지방정부의 재정부담을 덜기 위해 영국 보다 일찍 민관협력체계를 형성하였다. 이탈리아는 통합 유럽연합의 새로운 수질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한 투자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중앙정부 주도로 수도산업구조개편을 추진하여왔다.
 그러나 민관협력의 형태는 각 국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 따라 다르게 형성되어 왔으며 민관협력의 형태에 따라 중앙 및 지방정부, 민간기업의 역할이 다르게 설정되었다. 영국의 경우 지방정부는 1974년 수도사업 광역화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의 수도사업이 10개의 지역단위로 공사화됨으로써 수도산업의 거버넌스에서 제외되었다. 결국 영국의 민관협력은 중앙정부와 민간기업 간에 이루어져 왔다. 민간기업은 상하수도 시설의 소유권을 보유하고 투자를 책임지며 요금수입을 토대로 비용과 이윤을 회수한다. 중앙정부는 요금규제, 경쟁규제, 환경규제 등을 통해 민간기업의 독점적 행동을 통제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민간기업이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적정이윤을 향유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영국 내에서도 스코틀랜드와 웨일즈는 다른 민관협력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주정부 소유 공기업이 직접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으며 웨일즈는 주정부의 통제하에 있은 공기업이 투자책임을 지고 운영은 민간기업에 위탁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에도 단순 운영관리로부터 투자책임까지 민간기업이 부담하는 양여권까지 다양한 형태의 민관협력이 지방자치단체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즉 민관협력의 직접적인 당사자는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이다. 계약의 체결과 요금의 결정, 계약의 형태, 투자의 방법 등은 당사자 간의 계약에 의해 결정된다. 중앙정부는 3대 물기업의 시장지배력을 견제하고, 지방자치단체의 비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법과 제도를 마련하였다. 시장확보 경쟁 (competition for the market) 메커니즘은 프랑스 기업이 효율성을 유지할 수 있는 근간이 되고 있으며, 오랜 사업경험을 바탕으로 이들 기업은 세계 물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해외시장개척의 관점에서 정부와 민간기업의 관계는 보다 밀접한데 중앙정부는 상하수도 서비스 표준의 제정을 주도하는 등 거시적 사업여건을 형성시킴으로써 민간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지방공기업의 지분공개를 통한 민관협력 사례를 제공하고 있다. 즉, ACEA 등 대표적 물기업의 대주주는 지방자치단체이며, 일반에 주식이 분산되어 있고, 다른 물기업의 지분은 극히 미미하다. 따라서 민간의 자본은 주식시장 등을 통해 조달하고, 투자 및 운영의 책임과 서비스의 공급은 여전히 지방정부의 강력한 통제하에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 또한 지역의 여건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민관협력이 추진되어 왔다. 보다 진전된 민관협력이 활발한 지역은 중앙 이탈리아이며, 북부 이탈리아는 지방공기업이 우세하고, 남부 이탈리아는 지방자치단체에 의한 직접 경영이 보편적이다.
 이러한 사례를 토대로 분석할 때, 수도산업에 있어서 민관협력은 각국의 상이한 정치, 사회, 문화, 경제적 환경에 따라 다양한 방안이 발달되고 적용되어 왔다. 따라서 민관협력의 일반모델을 도출해 내는 것은 무의미한 작업으로 판단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국내의 제도적 환경(institutional environment)에 적합한 형태를 개발하고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아울러, 물산업 분야의 해외협력 모델의 설계에 있어서도, 민관협력의 목적, 당해 지역의 제도적 환경 등을 고려하여 적합한 형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