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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노 8단의 역작 -실전 우리 검도-연재 23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21-08-05 (목) 23:43 조회 :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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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연재23 실전검법수련을 시작하며 명심해야 할 조건들.hwp (19.5K), Down : 0, 2021-08-05 23:43:36

수련을 시작하며 명심해야 할 조건들

대충해서 빠르게 하지 마라

숙달된 사람일수록 천천히 하는 것은 필요이상 빠르게 벨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적에 대하여 방심하지 않고 전혀 빈틈을 주지 않고 미동도 없는 태도에 장엄한 기력이 합해져야 한다.

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대충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말한 원초적 기초가 빠진 잘못된 베기라는 것이다. 요즘 영화나 소설에서 나오는 배우처럼 빠르다 못해 날아다니는 것은 그냥 이야기로 흘려버려야 한다.

항상 이렇게 해서 벨 수 있을까?” “이렇게 하면 칼의 찌름이 목표물에 들어갈까?” “어디를 쳤는가?” 생각하고 수련을 이치에 맞게 자신의 템포에 맞추어야 한다.

찌름의 기본적 중점

자세를 갖추고 허리와 배에 힘이 들어간 찌름을 해라.

찌르기 전부터 칼자루를 꽉 쥐지 말고 찔러라.

찌르는 순간 칼자루를 꽉 쥐듯이 해야 한다.


기검체일치(氣劍體一致)의 일반적 사고

말은 쉽다. 몸과 칼과 기합이 일치된 동작이다.

이것은 실제 상황에서 풀이한다면 몸가짐 자세 눈빛 호흡으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여기서 우선 몸가짐은 장비와 옷차림 그리고 몸에서 풍기는 품격있는 자세다.


자세는 몸을 똑바로 서서, 입술 어금니를 가볍게 다물고, 가슴을 펴고, 어깨를 늘어트려 힘을 빼며, 허리와 아랫배에 힘을 모아 느긋한 모습으로 자세를 취해야 하고, 빠르게 걷거나 몸을 너무 숙이거나 뒤로 젖혀 걷는 것은 금해야 한다. 이것이 무게 있고 침착한 자세이다.

안법은 살펴보는 눈으로 날카롭게 보듯이 상황에 따라서 다르므로 너무 선해서는 안 된다. 이런 경우 3~5m 정도 거리를 주시하며 살피는 눈이다. 수련자는 눈의 높이로 보지만 두리번거리지 말고 한 곳을 주목함과 더불어 먼 산을 바라보는 눈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즉 자연스럽게 보라는 것이다.

항간에 들리는 검도 수련자의 수행도에 따라서 눈을 너무 째려봐서 상대편의 눈이 따가워 피하는 눈, 상대편을 빨아들이는 바둑알 흡입 눈, 아니면 상대편 앞에 큰 바위로, 산으로 보여 주저앉게 하는 눈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고수 중 고수를 표현한 말로 너무 신경쓸 필요가 없다.

호흡 또한 기합의 경우 한 동작이 마무리 되고 다음 동작에 들어갈 때 다시 새로운 힘과 기합으로 한다고 이해해야 한다.

칼자루를 꽉 잡아야 하는 순간이 있다.

한 동작이 마무리 되는 결정적 순간을 의미한다. 벤 순간 꽉 잡는다. 이후를 다음 동작으로 구분하면 된다.

칼만으로 벨 수는 없다.

아무리 수련을 해도 칼에만 신경을 쓴다면 실효성이 전혀 없다.

칼을 대신하여 몸이 들어가야 한다.” 아니 칼을 대신해 몸으로 베어야 한다는 것은 자신의 칼이 적의 몸에 도달해야 가능하다. 따라서 친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나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리하여 확실하게 목표물을 베는 것이다. 본국검의 금계독립세가 바로 이 자세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 모든 스포츠가 극렬한 승부의 순간 결국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전통검도 수련의 기초지식

예도(조선세법) 본국검의 연마와 수련을 기술과 마음으로 나누어 생각해보자.

우선 마음이 먼저냐 기술이 우선이냐를 굳이 말한다면 옛날 선배들은 마음을 수련하고 연마하는 것이 먼저라고 했다고 본다. 본국검이든 조선세법이든 간에 본래는 투쟁의 수단으로서 칼을 가지고 서로 베어 죽이는 기술이었다. 우리나라의 역사도 예도(조선세법) 본국검이 나오기 전에는 합리적인 검법이 없었으므로 기술의 한계로 인해 적을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 정신적 마음이 우선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신만 있다고 이기는 것이 아니므로 이를 병행하여 기술의 연마가 없다면 적과 싸워서 이긴다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주관적이며 객관성이 결여된 정신적인 연마도 물론 필요하지만 검도기술 연구에 중점을 두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그래서 기술 면에서 연구가 점점 발달되고 가장 합리적인 검법이 나오고 이를 수련하여 국가보위와 통일에 이바지한 호국무술이 되었던 것이다.

예도(조선세법) 본국검을 배우는데 있어서 수련자는 정신이 먼저인가 기술이 먼저인가를 말하라고 한다면 역시 기술, 즉 도보에 의한 검법과 단락을 하나하나 정하여 들어가는 것이 지름길이며 자연스럽다는 것을 명심해주길 바란다.

신라는 아주 작은 약소국이었지만 독립을 염원한 화랑검법인 본국검을 개발하여 삼국을 통일한 기술과 목숨을 아끼지 않은 젊은 화랑의 정신적 무장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본다. 따라서 정신과 기술 수련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어느 한 쪽만으로는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

예도·본국검을 배우는 정신적 목적

심신의 단련과 정신의 수양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행위로 단련되는 것은 육체지만 정신은 먹은 마음의 행동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예를 닦아 얻는 것을 알기 쉽게 표현해야 한다.


우선 인격 수양이다. 인성의 변화를 말하며 이는 염치(廉恥)를 알고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염()은 체면이고 치()는 부끄러움이다. 다시 말해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을 말한다. 또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반성하여 부끄러운 짓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 말은 분수껏 살고 분수를 알아라.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김수환 추기경의 네 탓이다가 모두 일맥상통한다. 이를 기본으로 도()와 덕()을 수행해야 하며 이의 목적 달성을 위해 성(), (), ()를 행동으로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은 모든 거짓된 생각을 버린 정성스러운 마음으로의 행동이며, ()은 어떠한 경우라도 두 마음을 같지 않는 신뢰의 마음과 행동이다. 또한 의()는 정의로운 행동이다. 올바르게 보는 것, 득과 실을 얻는 것을 모두 의()로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삶의 진리이다. 이것이 배우는 자의 목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한마디로 용()이라고 한다. 부끄럽게도 일본 칼, 일본 도복을 입고 우리 검도를 하는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야만 할 일로 반드시 우리 것을 찾아 수련해야 한다.(일부 단체를 말함이다) 이를 생각하면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체면과 부끄러움이 있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배울 것은 배우고 찾을 것은 찾아오고 개선하면 된다는 것이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말한 것처럼 배우는 인격수양이 결코 일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즉 우리 것을 만들면 우리의 것이 된다는 뜻이다.

전통 검법

형식이 본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칼을 뽑는 것과 칼집에 넣는 것은 우리나라 전통 검도에서는 그리 중요시하지 않았으며 일본 거합도에서의 혈진(칼 털기)은 더욱 더 문제가 되질 않는다.

잘못 인식된 일부 검도인들이 일본 거합을 본떠서 발도, 납도, 혈진의 잔재주를 인용하여 검의 본질인 타, , , 안법은 뒤로 하고 보여주기 식 연기에 우스꽝스러운 일본 거합도의 아류가 탄생하는 것 같은 우려가 든다.

칼이 있는 한 칼집에서 뽑아야 하고 다시 넣어야 할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 전통검도는 실전위주로 칼을 칼집에서 뽑은 상태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일본은 근래에 거합도는 칼집에서 시작된다고 차별해서 둘러대는 것이다.

 

선조들이 목숨 걸고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본국검, 예도(조선세법) 는 고유 검술이기에 그 묘미가 있고 의미도 새로운 것이다. 일본 거합도를 보여주기식으로 인용하는 것은 좋은데 본질이 없어진 싸구려 난장판 무술이 됨을 걱정하는 것이다. 더욱이 호랑이 그림 한 장보고 호랑이의 울음소리, 크기, 움직임, 숨소리, 상태까지 안다고 믿어버릴 것 같은 무모함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가장 효율적인 검의 운용은 살생이지 활인은 아니라는 것으로 10손가락으로 사용, 양손으로 칼날 줄기의 올바른 운용, 단전의 힘과 어깨 힘 빼기, 무릎과 발바닥의 움직임, 목표지점과의 거리와 적의 움직임 등등 많은 의구심이 있고 이를 가장 쉽게 몸으로 익혀야 하는 것이 바른 실전 우리 검도이다. 이 말은 즉, 근육으로 익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첫 칼과 두 번째 칼의 시간적 차이는 적과의 간격을 시간으로 표현하므로 긴장감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진검을 들고 적을 베려고 세의 동작을 하는 사람의 눈이 과연 살인의 눈이 무엇일까 한번쯤은 생각하고 연마해야 한다.

오늘날의 일본 거합도는 메이지유신 중기(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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