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호전환경부차관의 자전적 –공직심서-연재 6
2.7. 다양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라
네트워크 또는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란 사람이나 조직 간의 긴밀한 관계망 또는 가족이나 친구·친지 등을 포함한 풍부한 인간관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네트워크에는 학연이나 지연과 같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인맥도 있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다양한 만남을 통해 서로 교류하고 소통하고 공유하면서 형성되는 인간관계의 폭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
정책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전술한 과정들을 충실히 이행했다고 해도 그러한 정책(안)이 반드시 정부의 정책으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공공정책은 한 부처의 단독적 의사결정으로 확정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여러 부처와의 협의를 거치거나 국무회의의 의결과정이나 국회의 심의과정 등을 거쳐 확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의 정책(안)이 정부정책으로 확정되기 위해서는 정책입안 단계에서 여러 이해당사자와 전문가 등의 의견을 수렴하여 안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부 내외에서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는 여러 기관, 단체 등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정책을 결정하는 단계에 임박했을 때 공식적인 접촉을 통해 협조를 이끌어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외적으로 갈등만 노출시키고 시간만 끌면서 애를 먹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따라서 평상시 정책의 카운터파트(counterpart)에 있는 이해관계자들과 꾸준한 소통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기가 맡고 있는 업무와 관련된 이해당사자나 유관기관의 담당자가 누구인지, 그들이 현안과 관련하여 개략적으로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책결정에 임박해서가 아니라 평상시에 그들과 접촉하여 자기가 맡고 있는 일에 대해 설명하고, 애로사항을 두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등 꾸준히 상대방의 이해도를 높여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뿐만 아니라 비공식적인 접촉을 활용하는 것이 때로는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인간적인 교감은 협조를 이끌어내는데 매우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학연이나 지연은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그것은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공정하지 않게 이용되는 사례가 많아서 일 것이다. 그러나 정책 협조를 위하여 사심 없이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다면 긍정적인 면이 없지 않다고 본다. 서로 간에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많기 때문에 불신이라는 장벽을 넘어서 쉽게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카운터 파트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개인이나 기관을 찾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서로 간의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하여 이견을 좁히기에 한계에 이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자기가 맡고 있는 업무에 우호적이면서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영향력 있는 개인이나 기관의 도움을 청하는 것은 매우 유효한 방법이 된다. 그러한 개인이나 기관은 때로는 정부 외곽에서 찾을 수도 있지만, 정부 내의 시스템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기관이 청와대나 국무총리실 같은 상위의 정책조정기관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관에 우군을 만들어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평상시 업무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좋은 정책이라고 모두 성공한 정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책이라는 것이 앞서 언급한 여러 가지 절차에 따라 고려해야 할 요소들을 충분히 고려하여 잘 만들어지고, 이해당사자와 관련기관의 협조를 얻어 원만히 확정되었다고 해서 계획대로 순탄하게 이행될 것이라고 믿으면 그것은 오산이다. 정책결정 과정은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마련해서 이해당사자와 유관기관의 협조를 얻어 확정해나가는 일련의 과정이지만, 거기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정책이 잘 집행될 수 있도록 사전에 정책집행의 여건을 조성해나가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한 정책결정 과정의 하나이다. 대학에서 정책결정론을 배울 때에는 정책결정 과정에서 이해당사자 및 유관기관의 협조를 얻는 일이나 효율적인 정책집행을 위해서 우군을 확보하는 일 등을 가볍게 언급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현실에 있어서는 그러한 일들이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 더 중요할 수도 있다.
효율적인 정책 집행에 필요한 집단을 파악하고 그들을 우군으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미 정책결정의 여러 단계에서도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전문가, 유관기관 등의 의견을 수렴하고 협조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지만, 그렇게 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효율적인 정책집행을 위해 우군을 만드는 과정의 일환인 것이다.
정책결정과 집행과정에서 협조를 받아야 할 대상은 참으로 많다. 수많은 정책의 이해당사자들과 전문가, 시민단체, 관계부처와 기관들, 청와대, 국무총리실, 정보기관, 국회, 정당, 언론 등, 이들 모두가 평상시 관리해야 할 고객들이다. 평상시에도 이들과 소통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며, 때로는 그러한 능력이 우수한 공무원인지의 여부를 평가하는 잣대로서 작용한다. 이러한 역량은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더욱 요구된다. 사무관, 서기관 때에는 일을 잘하더니 국장이 되고 나서는 형편없어졌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사정에 연유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국장으로 승진하고 나서 갑자기 그런 역량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상하위직을 막론하고 정책고객들을 감동시키겠다는 자세로 꾸준히 노력하고 실천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울타리는 넓고 튼튼할수록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