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한다면 과거 어느 진영에서 싸우던 사람이 아니니 어느 쪽과도 소통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상대적으로 강점이 있지 않을까요?
한 직업에서 다른 직업으로 넘어갈 때마다 제가 고민한 가장 큰 기준은 ‘개인적으로 뭘 많이 얻을 수 있는가’나 성공 확률이 아니라 ‘얼마나 우리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였습니다. 기업을 경영할 때도 돈만 버는 영리기업을 추구하지 않고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고요. 그래서 외국기업에서 거액을 제시하며 회사를 인수하겠다고 제안한 것도 그 자리에서 거절했고, 개인들에게 백신을 무료로 공급했고, 인터넷 대란 때 국가기관에 기꺼이 인력을 무료로 파견해 해결했습니다. 경영자로서도 주주의 이익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직원들과 거래 기업 등 이해관계자 중심의 경영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이명박 정부의 미래기획위원회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공정거래 관행에 대한 문제 제기를 비롯해 창업 활성화를 위한 대한, 정보기술(IT)산업의 애로사항을 이야기하는 등 경제 전반에 대해 비판적 의견과 대안을 많이 제시했죠. 그런데 이야기를 해도 실행이 되지 않아 참 갑갑했습니다. 이 대통령이 ‘상생’ 얘기를 했을 때, “이슈를 꺼냈으니 꼭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별 소용이 없더군요.
빈곤 등 민생에 대해 좀 더 깊이 고민하게 된 것은 아름다운재단 이사로 활동한 것이 계기가 됐어요. 이사회에서 재단의 사업을 기획하고 결과를 평가하고, 또 희망제작소의 사회적 기업가 양성 프로그램에서 강의도 하면서 ‘사회개혁’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
같이 시기에 전문가로서 열심히 살면서 사회에 제 몫을 했고, 그 가치 역시 낮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민주화운동 경험이 없는 이들은 정치를 할 자격도 없다’고도 하던데요. 모든 사람이 같은 길을 걸었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이념으로 편을 나눠서 자기와 반대쪽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사실 확인도 해보지 않고 무조건 공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습니다.
저 때문은 아니겠지만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경제 민주화를 표방하고, 국회의원의 특권을 줄이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 그리고 민주당이 통합으로 거듭난 것도 저를 통해 국민들의 의사가 전달된 것이 조금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요?
과거엔 기업가가 정치적인 경해를 밝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 분야의 전문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여겼는데 앞으로는 좀 더 홀가분하게 발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시절 학교 공부에 흥미를 못 붙이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은 것이 인문학적 소양을 넓혀주고 인생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사람은 돈보다 귀한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돈이 없으면 사람의 존엄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황석영의 <어둠의 자식들>같은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소설보다 현실이 더 끔찍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각자 해야 하는 역할이 무엇인가?“ 한참 자의식 강할 때 의료봉사를 하면서 그런 고민들이 더 깊어졌습니다.
공짜가 반드시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며, 오히려 귀한 줄 모르고 낭비할 수도 있다는 것을요. 아무리 소액이더라도 돈을 내고 참여하게 하면 주인의식을 고취시키고 만족도와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복지를 확충할 때도 소득 상위층뿐 아니라 중하위층도 형편에 맞게 조금씩은 함께 비용을 부담하면서 혜택을 늘려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회사 상황이 어려워져도 지속할 자신이 있을 때 새로운 복지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죠. 국가 차원에서도 새로운 제도를 도립할 때는 지속가능성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국가와 기업이 다른 부분도 있다는 걸 유념해야겠죠. 기업과 달리 국가는 기본적으로 자립이 불가능한 분들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죠. 그건 헌법이 규정한 국가의 의무니까요.
차터 스쿨(charter school, 대안학교 성격의 미국 공립학교)에 대해서 이야기했어요. 차터 스쿨은 게이츠 회장 부부의 빌앤 멜린다 게이츠재단이 유일하게 미국 내에서 벌이는 사업인데, 그가 진짜 좋아서, 열정을 갖고 의미를 느끼며 일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인철수재단을 꾸려나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진솔한 얘기도 많이 해주더군요. “사회기업은 외롭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많이 모아라, 그러면 견디기가 쉬워진다”는 얘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또 팀을 꾸려 창의적으로 해결책을 찾아보라는 얘기였습니다. 그는 화장실을 예로 들어 “중요한 일인데도 흔한 일은 100년 이상 혁신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창의적이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면 ‘물 없는 화장실’도 만들 수 있다고 하더군요. 혁신가로서 기업을 경영한 사람의 얘기여서 실질적인 조언이 됐습니다.
재단 사업을 할 때 어떤 일을 직접 하고 어떤 일을 다른 곳에 맡길 것인지 잘 결정해야 하고, 남에게 맡길 거라면 평가기준을 제대로 세우고 처음부터 잘 설명해주라고 조언하더군요. 그래야 도움을 받는 비정부기구(NGO)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요.
손정의 회장도 현직 IT 기업인이면서 자선재단을 운영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원전에 관한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손 회장은 원래 원전에 대해 중립적 입장이었다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보고 ‘원전 폐기’ 입장으로 완전히 돌아섰다고 해요. 그래서 후쿠시마 어린이들을 돕는 재단도 설립했고, 신재생에너지로 아시아권 전체를 묶는 ‘슈퍼그리드’(2개 이상의 국가가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생산한 전기를 공유하는 지능형 전력망)를 만들 구상도 하고 있더군요.
우리나라에서는 소프트웨어와 같은 지식산업의 가치를 잘 인정해주지 않는 풍토여서 성장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전박적으로 ‘리스크 매니저먼트(위험관리)’보다는 ‘리스크 테이킹(위험감수)’ 문화가 강해서 리스크 매니저먼트 산업의 환경이 열약해요.
경영학이라는 게 실용적 지식의 집합이라, 직접 기업을 꾸려본 경험을 바탕으로 종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죠. 재무와 마케팅 등 경영학의 각 분야를 고루 공부하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기업의 문제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연결해서 소액의 자금이나 재능을 손쉽게 기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입니다. 창업에 돈이 필요한 사람과 기부자를 연결할 수도 있고요. 미국의 온라인 소액기부 및 대출중개 사이트인 ‘키바(
www.kiva.org)’를 모델로 연구 중이라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