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연옥을 흙의 감촉으로 그려내
인생 삼모작을 성공적으로 추수한 삶
-심상옥수필가는 인생 삼모작을 잘 마무리한 여사입니다.-
이철호 수필가가 -울림과 색깔의 합주-라는 표제로 열린 고희전에서 말한 덕담에 그늬의 삶이 잘 함축되어있다.
도예가로 수필가로 여성으로 유자향기처럼 질기게 향기를 품어내며 살아온 삶.
일행은 고희전이 펼쳐지는 삼성동 이브갤러리를 찾았다.
초기작품부터 최근작품까지 역사와 내면의 세계를 한자리에 모아 놓은 도예전이다.
지인들에게는 그간 세간에 던진 -그리고만남-이후의 수필집에서 간추린 동서양,고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써내려간 에세이들을 추려 고희기념 –합주-를 선사하기도 했다.
인생의 신기류인 일흔이란 나이에 걸맞게 펼쳐든 정화된 제호이다.
-내가 도예를 시작한 것은 전통도예가 지닌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화기의 모양새에 이끌려서이다. 잠재적인 조형미를 흙에서 불러 일으키고 그러한 것을 토대로 하여 흙을 만지곤 하였다.-는 그늬는 경남 산청 흙을 고집한다.
산청에서 채취한 다완 흙과 철사유를 사용하여 섭씨 1,310도의 전기가마에서 세 번을 구워낸다.
붓질과 찌르기,담그기로 다양한 철사유약을 사용하면서 2천년전 원시적인 것에 착안하기도 하고 전설이나 조상들의 기물과 오브제에서 테마를 잡는다.
형태가 정해져 있는 것은 흥미가 없고 일본 전통도자기인 오리베기법에서는 자유로움과 분방한 기력을 찾기도 한다.
그야말로 자신의 삶과 철학과 관념이 도예를 빚으면서도 재창조된다.
일련의 작업과정에 대해서는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이미지를 스케치하고 유약적인 색채와 안료에서 흐름을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유약과 형식이 일정하게 정해진 틀속에서 작업 현장과 여건에 따라 기분에 상당한 기복을 보인다.
그렇다고 전위적인 형식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그 뿌리는 전통적인 것을 초월한 그 무언가를 찾아가면서 현대도예로 승화하는 양식을 추구하는 것이 심상옥의 작품과정이다.
위대한 도예가는 자기 생애를 통해 인류가 닦은 예술의 역사를 환상의 세계로 끌어 올려서 독자들에게 설레임과 희열을 맛보게 한다.
그녀의 작품세계는 전통과 고전이 여전히 숨쉬고 있다.
인간은 전통에서 도망갈 수 없다고 단호히 선을 긋는다.
한국인의 피속에 전통이 흐르고 도망가려 해도 신체속에 흐르는 피가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흙을 존경하면서 흙에 파묻히지 않으려는 자세가 심상옥의 삶이다.
그래야만 다양한 조형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정형화하지 못한 형태와 검은 색조가 조형을 초월하여 인간적인 정으로 맺히기 때문이다.
흙이 가진 기억과 흔적속에서 세월의 자국과 이야기를 되살려내는 작업.
그래서 치밀한 계산에 의한 구성도 아니고 자연에 맡기어 불의 신에게 의지하면서 살아온 삶.
도자기는 음악이나 무용보다 직접 자연과 가까운 관계에 있다.
그래서 기암괴석에서 사랑과 진실을 엿보고 돌의 밀어를 듣고 괴석과 말할 수 있는 여인이다.갈대들에게서 해탈한 자들의 능선위에 앉아 수행하는 모습으로 환생되고 신라 경주의 하늘을 향해 뻗은 나무들을 보며 고갱이 원시의 생명을 찾아 타이티섬에서 예술의 절정을 맞았던 세계로 떨어지는 감동을 주워 담는다.
음악중에서는 베토벤의 운명을 들으며 오늘도 자유로운 생각의 여행을 떠난다.
도예에 대해 심상옥은 말한다.
-도예는 논리적으로 표현을 못한다. 어쩌다 어림으로 만들어진 우연히 많든 좋은 물건도 창작이라는 테두리 안에 들 수가 없다. 작가의 상상 곧 목적의식을 지니고 있는 정신이 나타나 있지 않으면 창작이라 말할 수 없다-
물질속에서 허구와 진실의 혼잡속에 방황하는 오늘날의 현대 창작세계에서 솔직한 도예가의 참 정신을 명쾌히 진단한 짧은 한마디가 같은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 새삼 긴긴 상념에 젖게 한다.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첫 배에 승선하여 함께 금강산을 다녀온 인연이 이제야 조금씩 심상옥 수필가의 내면을 읽기 시작했다.
고희전에서 만난 작품 세계에서는 진한 울림과 기묘한 색상이 어울리기도 했다.
이제 문단사에서도 심상옥수필가는 시서화에 능한 초정 김상옥,조병화시인,손소희소설가,문학평론가 김우종,소설가 이외수,시인 성춘복,시조시인 민병도 화가와 더불어 현대사에 있어서 시서화를 함께 섭렵한 인물로 각인되고 있다.
오늘도 심상옥은 치열한 경쟁속에서 두려움을 느끼면서 뒷모습으로 향한 곳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새 는 하늘을 날아갈 때 가장 희열을 느끼면서 우주를 담을 수 있다.
여름 창공을 누비는 새는 즐거우면서도 외롭고 외롭기에 이토록 열심히 날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다.
심상옥의 시간 속의 삶(생)이다.
이제 자유로움속에 또 어떤 자기만의 세계를 선사할지 기대된다.
(시인,수필가/길샘 김동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