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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샘의 나들이 길-4. 태화산 마곡사와 세조가 쓴 영산전 현판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22-07-01 (금) 19:07 조회 :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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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광보전 현판-표암 강세황

시문서화 사절로 꼽히던 표암 강세황(姜世晃, 1712~1791)의 글씨로 흘림체로 힘이 있고 유려하다.

본관 진주(晋州). 자 광지(光之). 호 첨재(添齋표옹(豹翁노죽(路竹산향재(山響齋표암(豹菴). 시호 헌정(憲靖)이다.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나, 8세 때 시를 짓고, 13~14세 때는 글씨에 뛰어난 솜씨를 보여, 소년기에 쓴 글씨조차도 병풍을 만드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아버지의 사랑과 교육을 받았으며, 매형이었던 임정(任珽)의 영향도 크게 받았다. 처남 유경종 외에도 허필(許佖) ·이수봉(李壽鳳) 등 과 절친하게 지냈으며, 이익·강희언 등과도 교유하였다. 당대의 유명한 화가였던 김홍도·신위 등도 그의 제자들이다. 벼슬에 뜻이 없어 젊은 시절에는 주로 작품활동에만 전념하였다. 32세 때 가난 때문에 안산(安山)으로 이주한 뒤에도 오랫동안 학문과 서화에만 전념하였다. 처음 벼슬을 한 것은 61세로, 영조의 배려에 힘입어 관계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후 64세 때 기구과(耆耉科), 66세 때 문신정시에 장원급제하였으며, 영릉참봉·사포별제(司圃別提병조참의·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하였다. 72세 때 북경사행(北京使行), 76세 때 금강산 유람을 하고, 기행문과 실경사생 등을 남겼다. ··화의 삼절로 불렀으며, 식견과 안목이 뛰어난 사대부 화가였다. 그 자신은 그림제작과 화평(畵評)활동을 주로 하였는데, 이를 통해 당시 화단에서 예원의 총수로 한국적인 남종문인화풍을 정착시키는 데 공헌하였다. 이밖에도 진경산수화를 발전시켰고, 풍속화·인물화를 유행시켰으며, 새로운 서양화법을 수용하는 데도 기여하였다. 평생 동안 추구한 그의 서화의 세계는 궁극적으로 습기(習氣)도 속기(俗氣)도 없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었다. 산수·화훼가 그림의 주소재였으며, 만년에는 묵죽으로 이름을 날렸다. 작품으로는 첨재화보(添齋畵譜)》 《벽오청서도》 《표현연화첩》 《송도기행첩》 《삼청도》 《난죽도》 《피금정도》 《임왕서첩(臨王書帖)등이 있으며, 54세 때 쓴 표옹자지(豹翁自誌)에 있는 자화상을 비롯하여 7~8폭의 초상화를 남겼다.

심검당 현판-송하 조윤형

심검당 현판은 정조 연간에 청백한 관리로 이름난 송하 조윤형(曺允亨, 1725~1799)의 글씨이다.

청빈한 그의 인품으로 굵직하면서도 날카로운 느낌으로 '심검'이라는 의미와 상통하는 글씨체이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치행(穉行), 호는 송하옹(松下翁). 할아버지는 판결사 조하기(曺夏奇)이며, 아버지는 개성부유수 조명교(曺命敎)이다.

문음(門蔭)과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1766(영조 42) 처음 벼슬길에 나간 뒤 1781(정조 5) 선공감주부가 되었으며, 1784년 예조정랑을 역임하였다. 이어서 선공감부정(繕工監副正)을 거쳐 보덕(輔德)이 되어 책례도감상례(冊禮都監相禮)를 겸하였다.

그 뒤 안악군수·광주목사(廣州牧使) 3·2·1목의 수령을 역임하고 돌아와 1791년 호조참의가 되었으며, 1797년에는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가 되었다. 그림과 글씨에 능하였는데, ·대나무 등의 묵화를 잘 그렸다.

글씨는 초서·예서를 잘 써서 일찍이 서사관(書寫官)을 역임하였으며, 위로는 대신들로부터 아래로 조례(皁隷)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그의 글을 얻으려 하였다.

작품으로는 유점사풍악당대사비(楡岾寺楓嶽堂大師碑)·이보혁무신기공비(李普赫戊申紀功碑)·용흥잠저고정기(龍興潛邸古井)등을 썼다.

마곡사 영산전 현판-조선임금 세조

영산전 현판은 세조가 1465년에서 1487년 사이에 마곡사에 들러 쓴 현판이라고 '마곡사 사적입안'에 기록되어 있으며 실제 현판에는 '세조어필 '이라고 쓰여져 있다.

재위 1455(세조 1)1468(세조 14).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유(李瑈). 자는 수지(粹之). 세종의 둘째 아들이고 문종의 아우이며, 어머니는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沈氏)이다. 왕비는 정희왕후 윤씨(貞熹王后尹氏)이다.

편액과 현판

편액(扁額)과 현판(懸板), 편액은 한 개이고 현판은 여러 개이다. 편액이 제목이라면, 현판은 내용이다. 그러므로 대웅전 등 전각과 일주문 등에 붙이는 것은 편액이 정확한 표현이다. 편액의 사전적 개념은 널빤지나 종이·비단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문 위에 거는 액자이다. 대부분이 가로로 걸기 때문에 횡액(橫額)이라고도 하지만, 숭례문 글씨와 같이 세로로 쓰기도 한다. 흔히 현판으로 통칭한다.

우리나라의 옛 건축물에는 대부분 건물의 이름, 성격, 품위를 나타내는 편액이 걸려있다. 편액은 '건물의 문 위 이마 부분에 써 놓은 글씨'라는 뜻인데, 편액은 건물마다 딱 하나뿐이다. ()은 글씨를 쓴다는 뜻이고, ()'건물 앞부분 높은 곳', 사람으로 치면 이마에 해당하는 곳이다. 한 건물에 현판은 여러 개가 있을 수 있지만, 편액은 입구의 한가운데에만 하나 있는 것이 다른 점이다.

(환경경영신문 www.ionestop.kr 환경국제전략연구소장, 시인, 문화평론가 김동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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