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도움도 안 받고 내 손으로 쓴 책?
순박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들은 왜 사라질까?
요즘 국회에서는 연일 출판기념식이 열린다.
해마다 이맘때면 의원들의 출판기념회가 앞 다퉈 열리고 선거가 임박하기 전 해에는 더욱 요동친다.
63빌딩 국제회의장은 정말 국제회의만큼 1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시골스러운 인물부터 동료의원들과 환경부, 노동부 산하기관 등 환경노동위원장으로서의 현 위치를 실감케 한다.
얼마 전 타개한 서울시 기술고시 출신의 최세영박사 영전의 쓸쓸함과 교차된다.
신의원과의 만남은 이미 이십여 년 전인 90년대 초반이다. 고 박세직의원과 환경분야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던 시기이다.
초선의원으로 환경노동위원회 국정활동에서 그의 모습은 당당하고 민첩했으며 강하고 근성있는 투사적 모습이었다. 특히 환경보다는 노동면에서 무서울 정도의 집념을 보였다.(이 책에서 김대중전대통령의 명령이었다고 고백)
그리고 60을 바라보는 신의원에게서 담백하면서도 약간은 비어있는 공간의 미학을 발견하게 된다.
어떻게 지내 왔길래 그를 또 다른 모습으로 투영되게 한 것일까.
이 책은 그의 정치적 격량기의 역사를 조명한 논픽션이며 사실을 자신의 시각 속에 담담하게 풀어가고 있다.
자석처럼 끌리게 하는 것은 대립의 양날을 세워 무조건적인 시시비비보다 있는 그대로 자신의 생각과 의지와 느낌을 적어갔다는 점이다.
읽어 가면서 많은 점들이 필자와 성향이 비슷함도 발견하게 된다.
일테면 낮은 자리에서는 얼마든지 친구가 되지만 상대가 높게 올라 설 때면 (현대사회에서의 기본적 잣대)슬그머니 그와는 먼발치서 관조한다는 점 등이다.
‘이 글은 내가 본 것을 중심으로 정리했기에 전체의 흐름을 정확히 표현했다고는 할 수 없다’고 시작점을 알리면서 강제징집이후 3년 만에 복학하면서 그는 ‘벤치에 앉아 여유를 부려도 누가 감시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학생운동시절을 풀어간다.
난생처음 마음씨 곱고 정직하게 일하는 기술자에게서 양복을 맞췄던 기억, 고대축제를 준비하면서 시위와 축제강행의 고민과 결단, 가두시위와 교내시위와의 선택과정에서의 운명을 생각하는 최초의 동기 등을 피력하면서 이 세상에서 순박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들은 잔인하고 거친 폭풍 앞에 스러져 버리는지를 깨닫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광주사태 현장과 80년 서울의 봄을 통해 민주주의를 배웠고 그것이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자신에게 다가온 거절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말한다.
‘내 민주주의는 교과서도 아니고 서적도 아니다, 경험 속에서 그 기초가 생겨 발전했다’고 정의한다.
국회의원으로서의 양심과 진정한 가치발견 면에서는 재개발이 서민을 보호하기보다 추방하고 있고 상공회가 대기업위주로 회장과 임원을 선출하는 한 중소상인을 대변하기 어렵다고 진단한다.
김대중대통령 후보시절 동교동에 초대받아 겸상을 받아 식사를 하는 동안 김대통령이 신의원의 고향 함평의 토산품인 토하젓을 정성들여 내놓았는데 토하젓보다 콩나물만 먹어 참다못한 김대통령이 언제 토하젓으로 젓가락이 가는지 유심히 보았다며 섬세함과 무딤의 충돌을 솔직히 토해낸다.
고건시장과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하면서는 공무원들이 장점이 많고 이 장점을 찾아 고무시키고 그 결과를 평가에 잘 반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느끼면서 고건시장에게는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균형감각을 배웠다고 한다.
대학시절 귀찮게 밀착 감시하던 담당 형사와의 만남에서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잊지는 말고 용서하자고 한 내용에서는 현 시대에 있어서의 아픔의 절제를 맛보게 한다.
노무현대통령과의 만남에서는 국회에 생각이 바른 사람도 있다는 사실과 어떻게 저런 사람이 요지경 정치판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하는 반문을 하게 된다.
서거 후에는 봉하마을에 행사로 가기보다는 지인과 몇이 진심으로 추모하기 위해 찾는다고 고백한다.
지역현안에 대한 국회의원으로서의 고민에 대해서는 강남구는 전봇대가 사라지고 강북은 흉물로 공중을 어지럽히며 우리 사회는 중대한 문제에 깊이 고민하지 않고 미래는 그때 가서 보자는 식으로 대안은커녕 고민도 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신의원의 생각과 필자와 맞아 떨어지는 대목도 대단지 아파트는 서울을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하루살이의 도시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성북구 거리를 휘돌며 자신이 가보지 못한 골목이 많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많이 아파하고 힘들어도 자신이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노상정담과 노상면담이야 말로 정치일정에 좋은 가르침이 되어주었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가르쳐준 쑥물과 베드민턴을 치면서 건강을 지키는 신계륜의원.
그는 오늘날 정치혼돈기인 75년 유신시절부터 80년, 90년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 정권시절을 타고 넘으며 진정한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려면 민주적 소양이 매우 중요하다고 결론 내린다.
‘민주적 소양은 나와 반대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도 민주적 소양이 없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민주적 소양이 있는 사람이란 어떤 경우든 문제를 민주적으로 풀어가며 그 결과를 모두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만들어 가는 사람을 의미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멈춤은 끝없이 싹트고 분화하면서 자라야 할 수많은 인간다운 삶이나 가치의 실현이 중단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민주주의자라면 기본적으로 처벌은 후순위며 예방이 선순위라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이 위치한 민주당이 정보화 사회의 젊은 정당이면서 연세 많은 세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정당이라면 온라인과 함께 오프라인 접수처를 마련하여 이들을 배려한 방문접수를 받아 주는 자세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80년 서울의 봄과 광주항쟁/정치입문과 절망과 희망사이//김대중대통령의 추억/노무현대통령의 기억/걸어서 평화 만들기 순으로 적어간 「내 안의 전쟁과 평화」는 치기적 정치인들의 빤한 치적의 나열보다는 담백하게 자신의 속살을 최대한 솔직하게 내 뱉고 있고 담담하게 반성과 건전한 자아비판이 가미된 자기성찰이 돋보인다.
‘확실히 내 운명의 길은 80년 5월 18일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항쟁의 도시 광주로 내려간 것에서 시작됐다.
아무것도 모르고 내려간 그 곳에서 상상할 수도 없고 감당할 수도 없는 엄청난 사태를 운명처럼 본 것이다. 마치 누군가에 이끌려온 것처럼 나는 그렇게 광주에 서 있었다.
나는 그때 갓 태어난 아이가 됐다.
지금까지 내가 보고 듣고 배운 것이 무너져 버리고 그 자리에 텅 빈 백지 한 장이 들어선 것이다.'
<시인-길샘 김동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