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민원에 대한 태도
5.1. 특혜 시비에 휘말릴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특혜(特惠)란 말 그대로 특별한 은혜나 혜택이다. 다른 상대와 비교하여 취약한 위치나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이나 기업, 국가 등에 주어지는 특혜의 경우에는 지원적 성격을 가지며,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통상이나 무역에서 특혜대우, 특혜관세라는 것이 그러한 예에 해당된다.
공무원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가 “특혜를 준 것 아니냐?”는 말일 것이다. 특혜 시비에 말려들면 국회, 언론, 사정기관 등에서 달려들어 조사다, 감사다 하여 온갖 괴로움에 시달려야 하고,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이미 남들의 눈총의 대상이 되어있기 십상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주변에서 너무나 자주 봐왔기에 대부분의 공직자들은 정책을 결정할 때 보수적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반대로 ‘특혜’라는 말 때문에 정당하게 대접을 받아야 하는, 또는 정책적으로 지원을 받거나 장려되어야 할 부문 내지는 기술, 기업들이 오히려 푸대접을 받거나, 사장(死藏)되거나, 고사(枯死)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도 공직자로서는 명심해야 한다.
문제는 어떤 것이 ‘특혜’인가 하는 데 대한 법적 규정 내지는 사회적인 합의가 우리사회에 명확히 정의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어떤 것이 특혜이고 어떤 것이 특혜가 아닌가를 두고 끊임없는 논쟁이 있어 왔다. 누군가 나서서 명확히 정의를 내려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자는 나름대로 특혜인가 아닌가를 구분하는 잣대를 만들어 애매한 상황에서도 소신껏 공직을 수행하고자 노력해 왔는데, 필자의 잣대가 후배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소개해본다.
먼저, 특허나 허가처럼 법적으로 명확한 조건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면 공무원의 재량적 판단을 최소화해서 특허나 허가를 내줌으로써 특혜 시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자격조건을 갖추지 못한 기업이나 개인에게 공무원이 재량의 범위를 벗어나 특허나 허가를 부여했을 때는 특혜 시비를 벗어날 수 없다.
어떤 사업을 추진하면서 특정 기술을 배타적으로 또는 우선적으로 적용하도록 하는 것은 특혜에 해당될까? 다수의 기업이 유사한 기술을 보편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데, 특정기업의 기술이 유리하도록 입찰 조건을 부여하거나 선정하였다면 그것은 분명 특혜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여타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지 않은 월등히 우월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그러한 기술에 맞는 입찰 조건을 부여하거나 선정하는 것은 특혜라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러한 우수한 기술은 국가가 정책적으로 장려하고 지원하여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일부 선진국의 경우에는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하여 기업에 방지시설을 설치하도록 하거나 배출허용기준을 설정하면서 "BAT(Best Available Technology)"라는 현존하는 가장 최고의 기술을 적용하도록 하는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여기서 BAT는 가격이 같거나 유사한 수준이면서도 성능 내지는 효율이 월등한 기술을 말한다. 이러한 BAT 정책에 힘입어 환경사업을 하는 기업들은 보다 나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하여 노력하게 되고, 배출업소에서는 그러한 신기술을 사용하여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환경은 점점 더 개선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하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몇 년에 걸쳐 막대한 비용을 들여 좋은 기술을 개발해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기존의 시장에 새로이 진입하기가 매우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한 상황 때문에 정부의 지원을 요청하는 사례가 종종 있는데,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그러한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특혜의 소지가 있다는 소극적인 판단으로 또는 그것은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비즈니스의 영역이라는 이유로 지원을 거부하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그러한 기술이 정부의 R&D사업으로 개발되었고 정부의 신기술 인증까지 받았음에도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러한 결과는 정부정책이 R&D정책 따로, 기준설정이나 사업추진 따로, 각각의 부문별 정책과 사업이 따로 따로 논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필자가 직접 경험한 사례를 한 가지 예로 들어보자. 환경부문에서 민원이 많이 발생하는 분야 중의 하나가 악취 문제이다. 환경부는 악취 민원을 해소하기 위하여 악취방지법을 통해 악취유발시설이나 지역에 대하여 악취허용기준을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악취허용기준은 악취유발시설의 부지 경계에서 관능법(사람이 코로 냄새를 맡아 감별하는 방법)에 따른다. 악취를 발생시키는 사업장은 악취방지시설을 설치하여 악취를 허용기준 이하로 줄여야 한다. 그런데 국내 모 기업이 외국기업과 기술 제휴를 통해 기존의 악취제거 효율보다 6배 이상 좋은 기술을 적용하고자 하였다. 기존의 기술들보다 다소 가격은 비싸지만 악취 민원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을 해도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기술만 좋으면 시장에서 그 기술이 쉽게 사용될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입찰 시장에서 기술에 대한 평가결과는 거기서 거기인 반면 가격경쟁이 낙찰을 좌우하는 절대변수였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그 기술이 사용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절실했다. 악취허용기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대폭 높이는 규제강화 조치, 기술 중심의 입찰평가 방식의 도입 등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안 되었다.
많은 예산을 들인 악취방지시설이 사실상 악취문제를 완전히 해소하지 못하여 민원을 반복 생산하고, 그래서 다시 예산을 투입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현실에서 예산 10%를 더 들여 악취 민원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었을 때 정부로부터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일이 특혜에 해당될까? 과연 정부는 악취허용기준을 대폭 강화했을까? 입찰시장에서 기술 중심의 평가제도가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특혜란 비슷한 사람, 비슷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기업들 중 특정한 사람이나 기업에게만 혜택을 부여했을 때 붙일 수 있는 말이지 남보다 월등한 실적 내지는 능력을 가진 사람, 다른 기업보다 월등히 뛰어난 기술을 가진 기업에게 그 능력과 기술을 제대로 펼쳐 보일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특혜는 아닐 것이다. 그러한 소신을 가지고 공직에 임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