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호 전환경부차관의 자전적 –공직심서-연재 16
4.2. 상식이 통하는 정책
상식(常識)이란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 또는 양식(良識)으로, 일반적인 견문과 함께 이해력, 판단력, 사리분별 따위를 포함한다. 건전한 판단력(common sense)이라는 표현과 일맥상통 한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 때 우리는 ‘상식에 어긋난다.’라는 표현을 쓴다.
정책은 헌법체계 내에서 수립되고 추진되어야 하지만 법률이란 것이 모든 사회적 현상이나 통념들을 일일이 다 규정할 수 없기 때문에 정책은 그러한 경우 국민들이 상식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과 수준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정책은 국민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정책은 국민들로 하여금 답답하다고 느끼게 한다. 그런 정책은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받을 수 없고, 따라서 성공할 수도 오래 갈 수도 없다. 아무리 옳은 정책이라고 할지라도 국민적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통해 시간을 갖고 추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때로는 국민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정책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정책도 있을 수 있으므로 국정을 운영하는 지도자의 입장에서는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밀어붙이려 할 수도 있다. 과거에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당시에도 많은 반대 여론이 있었지만 강행한 결과 오늘날 경제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된 사례가 있다. 이러한 사례를 우리는 종종 경험했고 기억하고 있다. 그런 경험이 정책결정자들로 하여금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정책을 강행하고자 하는 매력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에 따르는 사회적 비용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그런 사례가 쌓일수록 정부는 국민들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그리고 정부에 대한 불신은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도 좀처럼 치유하기 힘든 망국병(亡國病)으로 악화될 수도 있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들과 소통하려는 노력, 국민들의 대표인 여야 국회의원들과 대화하려는 노력이 정부 당국자들에게 많이 필요한 덕목이다.
정책의 결과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좋은 정책은 국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국민들의 삶을 궁핍하게 만든다. 당장의 이익이나 평가에 급급하여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받는다고 다 좋은 정책은 아니다. 국민의 복지요구에 호응하여 국채를 무리하게 발행함으로써 국가재정을 고갈시킨 최근 유럽의 경제위기가 우리에겐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도 각종 선거를 치르면서 국민들의 표를 의식한 선심성 복지공약이 남발되고 있어서 생각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다. 국민들은 복지재원이 결국 자기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는 것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당장 손에 쥐어지는 혜택에 표를 던지곤 한다. 세금은 내가 아닌 부자가 내면 된다는 사회주의적 발상에 기인한 것이다. 정치가 국민들에게 그러한 인식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공짜 복지란 없다는 점을 유럽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새삼스럽게 배우고 있다.
돈이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통해 부를 축적한 사람에게 과도한 세금을 물리게 되면 결국 경제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고, 그 결과는 일자리 감소로 나타나 임금 노동자들이 일터를 빼앗기게 되며, 급기야는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심한 빈곤 속으로 몰아넣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재벌을 포함한 대기업들이 정부의 비호 아래 각종 혜택을 영위하고, 중소협력사들의 납품단가를 후려치고, 근로자들을 착취해서 자신의 잇속만 챙기고 있다는 비판론적인 사고가 완전히 부정될 수는 없겠지만, 시장의 불공정한 거래를 바로잡는 일과 기업 활동의 동인(動因, motive)까지 사멸(死滅)시키는 일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정책결정자는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정책이 장기적으로 또 근본적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정책인가를 깊이 고뇌해야 한다. 올바르고 필요한 정책일지라도 그것이 국민의 반대에 부딪혔을 때에는 국민과의 소통에 최선을 다하여야 하고, 설혹 국민들이 호응하는 정책일지라도 장기적으로 국가와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이라면 재고, 삼고할 줄 아는 균형감각, 그것이 역사로부터 상식이 통하는 정책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는 잣대가 아닐까 생각한다.
(환경경영신문/환경국제전략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