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호전환경부차관의 자전적 –공직심서-연재 7
2.8. 이해당사자를 설득할 때는 진심으로 다가가라
이해당사자란 통상 목적과 관련하여 이해가 서로 대립되는 관계에 있는 사람을 말한다. 정책과 관련된 이해당사자와 정부가 대화할 때에는 서로 다른 이해당사자에 대해 각기 다른 정보를 전달해서는 안 되며, 상대방의 신뢰에 반하지 않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입각하여 행동해야 한다.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기 위해서는 이해당사자의 협조가 필수적이나 정책에는 언제나 양면성이 있어서 이익을 보는 쪽이 있다면 반드시 손해를 보는 쪽도 생기기 마련이다. 어떤 정책이든 모든 국민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일례로, 보편적 복지라는 미명 아래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복지혜택을 부여하는 무상급식이나 무상보육과 같은 정책도 재원의 한정성으로 인해 기채(起債)를 할 경우라면 미래세대의 부담을 전제로 돈을 당겨쓰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의사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미래세대의 피해 내지는 불이익, 불만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따라서 소수라고 해서 불만족스러운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상대방의 입장이 강경하다고 해서 급한 불은 끄고 보자며 합당하지 않은 요구를 일단 수용하겠다는 식으로 약속을 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본질을 감추고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상대방을 속이는 일은 더 더욱 안 된다. 당장 눈앞에서는 해결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더 큰 문제, 즉 불신의 늪에 빠지게 된다. 한번 거짓이 탄로나면 그 이후에는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통하지 않게 된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손으로 태양을 가리는 일은 언젠가는 밝혀지게 되어 있다.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아무리 상대방의 입장이 강경하다고 해도 꼭 추진해야 할 정책이라면, 국익과 국민 대다수의 행복을 위하여 해야 할 일이라면 공직자는 진정을 다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한번으로 안 되면 두 번 세 번, 수십 번을 만나서라도 끊임없이 설명하고 협조를 구해야 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고도 했다. 열심히 만나서 대화하다보면 진정이 통하게 마련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합리적인 타협안이 나타날 수도 있다. 꼭 필요한 정책일수록, 중요한 정책일수록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화와 설득을 통해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길이 반대를 무릅쓰고 몰아붙이는 것보다 오히려 정책을 추진하는데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대화와 설득의 과정을 건너뛰고 정책을 추진하다가 막상 정책 집행과정에서 엄청난 저항에 부딪혀 오히려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는 경우를 우리는 주변에서 종종 보아왔다. 물론 이념적으로 너무 편향되어서 도저히 합리적인 대화로는 타협이 안 되는 집단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국민적 판단에 맡기는 수밖에 없지만 그러한 사례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로 신중히 관리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 대민행정의 예로 들었던 팔당호 수질 사태를 다시 한 번 복기해본다.
1998년 필자가 수질정책과장이던 시절, 한강을 비롯해 낙동강, 금강, 영산강 등 4대 강의 수질개선종합대책을 마련할 때의 일이다. 2000만 수도권 주민들의 식수원인 팔당호의 수질이 악화되자 그 주요 원인으로 팔당호 주변에 무질서하게 들어선 음식점과 숙박시설들이 언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종합대책을 마련하면서 여러 가지 사전 예방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팔당호 상류의 남한강과 북한강 및 경안천 양쪽 500미터~1킬로미터를 수변구역으로 지정해서 그 구역에는 음식점, 숙박시설, 공장, 축사 등 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시설의 입지를 근본적으로 금지하는 방안이 마련되었다. 동시에 규제에 따른 재산상의 피해를 보상하는 차원에서 강의 하류에 거주하며 수돗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물이용부담금을 부과하여 상류의 규제지역 지자체와 주민들을 지원하도록 하였다.
대책(안)을 언론을 통해 발표하고 공청회를 개최하였는데, 팔당호 주변지역 주민들은 물론이고 강원도와 충북지역의 주민들까지 버스를 동원하여 공청회장인 세종회관을 무단으로 점거하고 농성하는 바람에 공청회는 개회도 못하고 무산되고 말았다. 정부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그 일로 농성을 주도한 많은 주민들이 경찰에 잡혀갔다. 그 후 세를 결집한 2만여 명의 주민들이 여의도 광장에 모여 격렬한 반대시위를 펼치는 등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어 갔다. 사태를 해결하는 방법은 반대시민단체와 대화를 하는 것뿐이었다. 1차로 방송사의 협조를 얻어 반대단체와의 공개토론회를 개최해서 대책안의 당위성에 대해 설명하고 협조를 당부했다. 반대하는 쪽은 요지부동이었지만 그래도 대화의 여지는 남겨두었고, 그 후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주민대표들이 원하는 대로 당시 국장님과 필자가 번갈아가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수십 번에 걸쳐 만났다. 때로는 밤을 새워 통음을 하면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은 만날수록 서로에 대한 불신이 점차 해소되고 대책안의 내용에 대한 이해가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했다.
주민들의 불만의 근원은 규제에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부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이었다. 앞에서는 지원을 약속해놓고는 뒤돌아서면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불만, 대책을 통과시켜놓고 나면 나 몰라라 한다는 불만이 팽배했다. 규제의 불가피성에 대한 설득과 함께 지원에 대한 약속은 꼭 지킨다는 신뢰를 심어주는데 최선을 다했다. 대책안의 확정에 앞서 대책을 확실히 이행하기 위한 담보로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그 안에 주민들이 희망하는 지원방안을 포함시키고, 법률안의 조문 하나하나에 대해 밤을 새워가며 주민대표들과 협의를 하였다. 마침내 새벽 5시 주민대표들의 사무실에서 특별법(안)에 대한 최종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주민대표들은 국회의원들을 찾아가 최종합의안이 의원입법 형식을 통해 법률로 제정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해 국회에서는 만장일치로 ‘한강수계 수질개선 및 주민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되었다.
주민대표들은 “지자체 공무원들도 잘 만나주지 않는 우리 주민들을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거리낌 없이 만나주고 찾아와 주고, 욕을 먹으면서도 끝까지 우리의 말을 들어주는 모습에 솔직히 말해 감동했다”고 말해주었다.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극렬하게 반대하는 주민대표들과 근 반년에 걸쳐 수십 차례의 만남을 통한 진심어린 설득과 약속은 꼭 지킨다는 신뢰를 심어주기 위한 노력, 법제화 추진, 이런 일들이 결국 종합대책이 확정되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진심과 열성을 가지고 대화를 한다면 서로 통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필자의 공직인생에서 매우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